ADVERTISEMENT

[노트북을 열며] 중국을 떠날 수 없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주 방문한 중국 톈진시 빈하이(濱海) 신구의 신흥정밀 톈진법인. TV·자동차 등에 쓰이는 각종 금형 부품 생산 업체다. 이 회사 강병우 법인장은 요즘 중국 노동자 파업 소식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1500여 명에 달하는 현장 직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인단다. 근무 환경에 불만은 없는지, 초과근무 수당 지급에 차질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챙긴다. 그는 ‘그럼에도 한 달 종업원 이직률이 10%를 넘는다’며 노무관리의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이는 중국 진출 업체 대부분이 갖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광둥(廣東)에서 시작된 파업은 주요 산업도시로 확산 중이다. 게다가 임금(최저임금 기준)은 매년 20% 안팎 오른다. 중국 탈출을 검토하는 공장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국 제조업 매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최악의 경우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인가?’ 톈진·칭다오·쑤저우(蘇州)·둥관(東莞) 등의 중견 투자업체 사장 15명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견디고, 버티고,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베트남·인도 등의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중국만큼 생산여건을 갖춘 곳은 없다는 지적이다.

그들이 말하는 ‘중국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의 핵심은 생산과 시장의 통합이다. 중국이 단순 ‘세계공장’이었던 시절, 투자 비즈니스는 현지에서 제품을 조립·생산해 미국·EU·한국 등에 수출하는 게 주류였다. 생산과 시장이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세계공장’이면서 동시에 ‘세계시장’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생산해 현지 시장에 공급하는 형태가 더 중요해졌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자동차 시장이다. TV가 그렇고, 에어컨이 그렇고, 또 휴대전화가 그렇다. 이 시장을 외면하고는 글로벌 전략을 논할 수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임금이 올라도, 파업이 벌어져도 중국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중국에 코 꿰인 서방기업’이라는 표현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신흥정밀도 다르지 않다. 이 회사 제품은 이웃 삼성전자 톈진공장에 납품된다. 삼성은 이 부품으로 TV·휴대전화 등을 만들어 현지 내수시장에 공급한다. 삼성이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포기할 리 없다. 삼성이든, 신흥정밀이든 중국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연쇄 파업사태에 대한 대응책은 분명하다. 우리가 국내에서 해왔던 생산성 향상 노력을 현지에서도 추진해야 한다. 어차피 임금은 오르게 돼 있다. 그게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이기 때문이다.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법이 정한 임금 지급과 복지,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 등 노무관리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는 얘기다.

“가긴 어디를 갑니까. 중국의 시장이 커질수록 현지 생산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겁니다. 합법경영만 한다면 기회는 무궁합니다. 지금 노동현장의 불안은 오히려 기업의 옥석(玉石)을 가리는 계기가 될 겁니다.” 강 법인장은 중국 직원들과의 미팅 시간이 됐다며 자리를 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