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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더 아름답게' 도시에 빛을 입히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5면

내가 한국을 다시 찾은 것은 거의 10년 만의 일이었다. 그 사이 한국은 참 많이 변해 있었다. 공항도 바뀌어 김포가 아닌 인천 신공항에 내려야 했다.

밤시간 신공항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은 전혀 막힘이 없었다. 오랜만에 차창 너머로 보는 한국의 야경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건물이나 다리 등은 섬세하게 '계획된 조명'으로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건물이 없는 지역의 큰 느티나무나 숲의 조명도 근사했다. 때문에 서울로 들어가는 길은 심심하지 않았다.

그런 감흥은 서울 시내로 들어와서도 여전했다. 서울은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그곳이 더이상 아니었다. 최소한 밤 풍경은 기존의 '서울관'을 확 바꾸어 버렸다.

2년 동안 대사관에 근무한 덕분에 나는 '서울통'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한국인의 성품이나 특징 또는 한계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시절에 한국인들에게는 밤거리를 아름답게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크고 화려한 간판과 네온사인들, 그리고 가로등과 몇몇 문화재(동대문이나 남대문 등) 등은 불빛을 받아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빛났다. 그 정도가 당시 '환경 조명'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이었다.

밤새도록 상점 안을 그저 환하게 밝혀놓은 곳은 많았으나 그 건물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는 노력은 엿보이지 않았다. 큰 건물 앞마다 의무적으로 마련해 놓은 환경 조각물마저 별도의 조명을 받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던 서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미감 넘치는 조명을 받은 한강의 많은 다리들과 시내에 즐비하게 솟아 있는 일정한 높이 이상의 빌딩들의 자태는 신비로움을 더했다. 명암에 따라 살며시 추녀선만을 드러낸 남대문과 덕수궁의 입구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야경의 극치였다.

그 영문이 궁금했는데, 다음날 실마리가 풀렸다. 경제력에 비해 문화적 환경이 취약했던 한국은 내가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아 반성의 물결이 크게 일어났다고 한다. 그 결과 자연환경·역사적 환경·소리 환경, 그리고 야간 환경에 대한 다양한 개선책이 마련되었다. 특히 야간 환경의 경우 환경부와 문화부가 힘을 합쳐 강력한 '야간환경개선위원회'(이하 개선위)를 조직하고, 또 10개년 계획을 세워 실행에 나섰다.

그런 환경개선이 대외적으로는 관광산업 진흥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대내적으로는 자국민들의 정서에 큰 작용을 할 것임을 깨달은 개선위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또한 개선위는 지자체별로 '야간조명 대상 선정위원회'(이하 위원회)를 두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초반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의 야간환경이 눈에 두드러지게 개선되는 것을 목격하자 스스로 야간환경 개선에 열을 올리는 지자체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 성공한 지자체장들의 재당선율이 두드러지게 높아졌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이러자 지자체들은 앞다투어 위원회를 두었다. 이 위원회는 야간조명이 필요한 대상물의 선정과 그 조명의 질을 감독하고, 야간조명에 드는 경비를 누가 부담할 것인가를 결정했다.

조명 대상을 선정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고층건물 밀집지역, 역사적 건물이나 조형물이 있는 곳, 고속도로나 철도의 인접지역, 다리나 댐과 같은 특수 인공 조형물이 대상이었다. 물론 향토로서 자랑할 만한 나무·바위 등도 그 대상에 속했다.

이와 함께 위원회는 그 대상물이 야간에 어떻게 보여야 더 아름다울 것인가 제시하는 일도 해야 했다. 이런 제도 때문에 한국은 무대조명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환경조명 전문가들이 조직적으로 교육되는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요즘은 환경조명 디자인과 컨설팅으로 인한 외화 획득도 적지 않다고 한다.

위원회는 개인 소유거나 공공 건물이거나를 불문하고 조명 대상물의 중요도에 따라 그 조명경비를 지자체가 모두 부담할 것인지, 건물주가 일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해 결정한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건물주에게 경비 부담을 줄이게 해준 것이 이 프로젝트를 크게 성공시킨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아름다운 밤의 나라, 코리아 만세 !

(2010년 어느 외국신문에 실린 문화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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