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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육본·군검찰 질책] 군, 곧바로 부동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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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성 진급 비리 의혹 수사를 둘러싼 육군본부와 군 검찰의 갈등이 결국 대통령의 경고를 불렀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수사를 둘러싼 논란에 '입 단속'을 지시했다.

15일 오전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윤광웅 국방부 장관(단상 완쪽부터),남재준 육군 참모총장,이한호 공군 참모총장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변선구 기자]

그러면서 수사 진행 상황을 왈가왈부 문제 삼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는 육군에 대한 질책이다.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수사에 불만을 표시하지 말라는 군 통수권자의 지시다. 동시에 "수사 상황을 공개해 여론의 힘을 얻지 마라"는 언급은 군 검찰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15일 오전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통해 전파되자 군은 곧바로 부동자세에 들어갔다. 군 검찰 수사에 대한 군 내부의 언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군 검찰에는 기자 접촉 금지령이 다시 떨어졌다.

육본과 군 검찰의 갈등은 지난 13일 한 시간가량 이뤄진 육군 참모총장과 국방부 차관 등의 회동에서 노출됐다.

이날 오후 4시10분쯤 서울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유효일 국방부 차관이 찾아 왔다. 직후 박주범 국방부 법무관리관도 공관으로 들어갔다.

유 차관이 만든 자리였다. 유 차관은 군 검찰이 요청한 육본 J대령의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하지 않은 바 있다. 두 사람이 군 검찰 수사를 설명하자 남재준 총장은 심경을 토로했다. "인사기록 위조는 없다" "현역 중령의 구속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유 차관 등은 "(육본 수뇌부에 대한) 계좌 추적은 없다"고 총장을 달랬다. 그러자 남 총장은 "수사를 지켜보겠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군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이날까지도 육본 내부에선 "군 검찰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알려 여론의 힘을 빌리려 한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우리도 군 검찰처럼 언론에 설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거셌다. 반면 군 검찰은 "육본이 수사에 조직적으로 비협조하며 중단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불만을 가졌다.

수사 시작부터 육본과 군 검찰은 첨예하게 대치했다. 지난달 군 검찰이 계룡대로 수사관을 급파하자 육본은 인사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그러자 군 검찰은 압수수색 카드를 꺼냈다. 인사기록을 담은 컴퓨터와 금고를 통째로 들고 올라왔다.

이후 육본은 컴퓨터 가동 때 필요한 암호를 아는 사병들을 서울의 군 검찰로 올려보내는 것을 거부했다. 직후 군 검찰은 지난 10월 장성 진급 선발위원회의를 담은 CCTV 녹화 테이프의 고의 폐기 여부 조사에 나섰다. 상황마다 부닥친 것이다.

육본과 군 검찰의 갈등에는 근본적으론 '군 검찰 독립'과 '문민화'라는 참여정부의 국방 개혁이 숨어 있다. 군 검찰 독립은 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육군 지휘관의 권한 약화를 초래한다.

남재준 총장은 지난 9월 육본 회의에서 '정중부의 난'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군 사법권 독립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민화 역시 국방부의 주류인 육군을 민간인으로 물갈이하는 결과가 된다.

군내 일각에선 이 때문에 이번 수사가 향후 육군 통제를 위한 성격이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조직 통제에는 인사권과 사법권이 핵심인데 군 검찰을 통한 인사비리 의혹 수사로 두 가지 모두를 얻으려 한다는 주장이다. 육군 일각에선 이번 수사가 육참총장이 가지고 있는 인사권을 청와대가 임명한 국방부 장관에게 넘기도록 유도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육본과 군 검찰의 갈등이 결국 청와대에 대한 군의 불만으로 흐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윤 장관은 "군에 예전처럼 파렴치한 비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장관이 책임지고 조속한 시일 내 (이번 수사와 갈등 양상을) 마무리하기 바란다"는 대통령 지시를 전달했다고 한 참석자가 말했다.

자칫 청와대에 대한 군의 불신 분위기가 만들어져서는 안 되며 이를 장관이 차단하라는 취지로 보인다. 이 참석자는 "대통령은 장관에게 군이 갈등 양상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고도 지시했다고 알렸다.

대통령의 경고로 군 검찰은 육본의 거센 저항을 피하게 됐다. 하지만 육본 수뇌부의 개입을 밝혀내지 못하면 수사를 계속하기 힘들어진다. 군 검찰이 동시에 떠안은 부담이다.

채병건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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