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15를 사는 조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과 프랑스 회사가 한국에 차기 전투기 같은 핵심병기를 팔려고 사운을 건 경쟁을 할 때 한국이 '같은 값'이면 미국의 전투기를 사는 것은 당연하다. 국방부가 2008년까지 4조원 이상을 들여 40대를 구매할 전투기 기종으로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을 제치고 미국 보잉사의 F-15K로 사실상 결정한 것도 한·미관계가 부린 조화(造化)라고 하겠다.

그래도 뒤끝이 시끄럽다. 다소측이 평가내용의 공개를 요구하고, 일부 시민단체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압력을 받아 성능과 구매조건에서 불리한 F-15K를 선택했다고 항의한다. 한마디로 '같은 값'이 아닌데 미국 때문에 보잉을 선택했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

그러나 감정과 선입관 없이 두 기종을 비교하면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할 때와 같은 결론에 이른다. 사과가 오렌지보다 좋은 과일이라고 할 수도 없고 오렌지 맛이 사과 맛보다 좋다고 할 수도 없다. 전투기 조종사인 공군의 어느 장성은 그것을 솔개와 독수리의 비교에 비유했다. 결국 용도의 문제라는 말이다.

라팔은 기동성의 우세를 강조하면서 F-15K가 리무진이라면 라팔은 스포츠카 같아서 공중전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통합전자 시스템에 의존하는 현대전에서 도그파이트(Dogfight)로 알려진 근접 공중전은 이미 낡은 싸움방식이다. F-15K는 저속에서의 열세를 고속에서의 우세와 수직상승으로 보완한다.

잠자리 눈으로 불리는 전자식 레이더 에이사(AESA)는 라팔의 자랑이다. 그러나 에이사는 아직 개발단계에 있다. 개발이 끝나 실용화돼도 초기에는 안테나 값만 3억5천만달러쯤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공군은 에이사 값의 절반이 채 안되는 F-15K의 MSA 안테나를 쓰다가 보잉도 개발하게 될 에이사형의 값이 많이 떨어진 뒤에 그것으로 교체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보잉사는 F-15K가 조종사 두 사람이 타는 전투기이고 라팔은 한 사람만 타는 전투기임을 자랑한다. 두 자리 전투기에서는 두 사람의 조종사가 임무를 분담하여 심리적인 안정을 얻고, 그래서 훨씬 능률적으로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많은 조종사들은 한 자리보다는 두 자리 전투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통합전자 시스템이 충분히 기능을 발휘하면 두 자리의 중요성은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보잉은 F-15K의 공대공,공대지,공대함 공격능력이 우세한 반면 라팔은 공대지와 공대함 공격능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전투기 전문가들은 라팔이 공대지와 공대함 공격능력을 갖추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한다. 긴 안목으로 보면 그것도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두 기종의 성능을 비교해 나가면 끝없는 장단점의 나열이 된다. 그래서 1차 평가의 결과 두 기종간의 점수차가 3% 이내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미국 공군이 F-15를 2030년까지만 쓰기로 결정한 것은 마음에 크게 걸린다. 개인도 모델 아웃(斷種)되는 자동차는 사기를 꺼린다. 무엇보다 부품공급의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전문가에 따르면 보잉사는 '군사항공국'(MAA)이라는 별도회사를 차려 F-15가 존재하는 동안 장기적인 후속 군수지원을 할 채비를 갖췄다. 보잉사가 쏠쏠한 부품장사를 하는 한 부품 걱정은 없다는 것이다.

佛 수준 기술이전 받아야

한국 공군은 한국의 위치에서 전략무기로 간주할 수 있는 중형(重型)전투기를 원한다. F-15K가 그것으로 앞으로 30년 정도 중국의 SU-27, 북한의 미그29, 일본의 F-15J와 F-2에 대항할 수 있다. 1천2백㎞의 F-15K의 비행거리 안에는 중국의 베이징(北京)까지 들어간다. 중형(中型)의 라팔은 이런 전략개념에 미치지 못한다.

라팔이 탈락하면 한국·프랑스간에 외교문제가 생길 것이니 차라리 FX사업의 착수를 몇년 미루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F-15가 탈락하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망발처럼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FX사업의 기종선택은 주권국가의 권리행사다. 선택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장기적인 안보이익이다. F-15K로 결정했으면 정부는 보잉사로부터 다소사가 약속했다는 수준의 기술이전과 절충교역(보상구매)을 반드시 받아내는 데 총력을 쏟으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