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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영화진흥위원회는 아는가 영화인들이 왜 불신하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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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본지 5월 28일자 26면>

이번엔 제63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시’가 불씨다. ‘시’는 지난해 영진위 마스터영화제작지원 사업 심사에서 탈락했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부터 0점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영화인들로부터 노무현 정권 당시 문화부장관을 지냈던 이 감독의 전력을 문제 삼은 ‘정치 심사’라는 의혹을 산 것이다. 그러다 다시 “칸에서 각본상 받은 영화를 영진위는 빵점 줬다”는 영화인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15일 영진위는 해명자료를 냈다. “시나리오가 아니라 트리트먼트(줄거리 요약본)를 제출했기 때문에 서류 요건 미비로 0점을 줬다. 하지만 최고점과 최저점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심사 결과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시’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고려해 영진위가 출자한 다양성영화투자조합 등을 통해 5억원을 간접 지원했다”는 주장도 같았다. 이튿날 ‘시’의 제작사 파인하우스필름이 이를 반박했다. “신(scene·장면) 번호만 붙이지 않았을 뿐, 완성된 형태의 시나리오를 냈다. 다양성영화투자조합에서 받은 5억원은 투자를 받은 거지, 그게 무슨 지원이냐”는 얘기였다. 영화제작가협회 등 영화관련단체들은 17일 조 위원장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성토에 나섰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건 영진위의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사실 지난해 9월 조 위원장 취임 이후 영진위와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이 적지 않았다. 올 초에는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을 놓고 잡음이 심했다. 조 위원장이 소속된 한 특정단체가 응모와 심사에 관련됐기 때문이었다. 지난달에는 칸 영화제 출장 중이던 조 위원장이 독립영화 제작지원작 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작품을 선정해달라고 해 물의를 빚었다. 두 경우 모두 제3자가 납득할 만한 속 시원한 해명은 들리지 않았다.

영진위는 ‘영화 진흥’도 좋지만, 그보다 영화인들이 왜 영진위를 불신하는지에 대해 고민부터 해야 한다. 왜 ‘정치색을 띤 표적 심사’라는 욕을 먹는지, 왜 영화단체들이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일 처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했다면 지금처럼 영화계가 온통 혼란스러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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