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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분쟁 대가… 최악 경제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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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예루살렘·베들레헴=이훈범 특파원] 전쟁보다 더 시민들을 그늘지게 만드는 건 경제난이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이나 마찬가지다. 오슬로 협정 특수로 1996년 7%를 넘었던 이스라엘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마이너스 0.5%로 곤두박질했다. 7%이던 실업률은 9%로 치솟았다. 올해는 10%를 넘을 전망이다.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 심각하다.

"지난 두달 동안 집 한 채 팔지 못했다. 후세인이 스커드 미사일을 퍼붓던 걸프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 못쓰고, 가진 사람은 돈을 달러로 바꿔 마당에 파묻어둔다." 예루살렘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암논 레솀(46)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최악의 경제난"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행사 대표 모셰 키야르(51)는 "예년 같으면 부활절을 앞두고 성지순례객이 미어터졌을텐데 지금은 전세버스 10대가 6개월째 놀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이스라엘 전체인구의 6분의1인 1백10만명이 빈곤층이다. 분쟁 탓이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첨단산업에 대한 해외투자가 뚝 끊겼고 관광산업이 얼어붙었다.

이스라엘 경제가 독감에 걸렸다면 팔레스타인 경제는 빈사 상태다. 최소한의 생필품 거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스톱'이다. 특히 오슬로 협정 이후 관광특수에 잔뜩 기대를 걸고 많은 투자를 했던 팔레스타인 호텔업계는 치명타를 맞았다.

"3백50개에 불과하던 호텔 객실수를 6천개로 늘렸다. 하지만 호텔이 완공도 되기 전에 파괴되거나 이스라엘군에 점령당했다. 파괴된 것은 수리할 엄두를 못내고, 성한 것들은 투숙객 대신 이스라엘군이 막사로 쓰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미트리 아부 아이타 관광장관의 하소연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한국 자동차의 인기는 대단하다. 시장점유율이 각각 11%, 20%로 일제차에 이어 2위다.

하지만 경제력을 잃은 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재작년까지 이스라엘에서 매달 1천2백대씩 팔렸던 현대자동차의 판매량은 요즘 월 2백~3백대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현대자동차의 팔레스타인 총딜러인 오사마 아가드(44)는 "지난해 초까지 한달에 1백50대 정도 팔았지만 요즘은 한 대도 팔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이번달엔 미니밴을 7대나 팔았다"며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병원 구급차들이 모두 망가졌기 때문"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시민들이 치러야 할 분쟁의 대가는 너무도 컸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모두 패자이고 피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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