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뷸런스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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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천당과 지옥이 수백만년에 걸친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화해의 표시로 천당과 지옥을 잇는 다리를 놓기로 했다. 각자 상대국을 향해 다리를 놓아가다 1년 뒤 중간지점에서 만나 연결, 개통시킨다는 계획이었다.

1년 후 중간지점에 도달한 지옥의 기술자들은 분개했다. 천당쪽에선 공사를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신을 보내 따지니 천당에선 "미안하다. 건축업자를 단 한명도 찾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헛공사를 한 지옥에서 사기죄로 천당을 고소했지만 재판은 열리지 못했다. 천국에 변호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염라대왕이 옥황상제에게 "각오해. 당신은 차기 옥황상제 선거에서 분명히 떨어질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답은 "염려 마. 유권자들은 몰라. 천국엔 기자도 없어"였다.-한때 떠돌던 우스갯소리다.

'화가와 변호사는 흰 것을 검게 만들 수 있다'든가 '좋은 변호사는 나쁜 이웃'이라는 속담도 있지만, 이런 농담들이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羨望)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적을 것이다.

'변호사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모든 형사피고인이 변호인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절도죄로 유죄평결을 받은 기드온이라는 가난한 사나이가 62년 "변호사의 도움 없이 재판을 받은 것은 부당하다"며 연방대법원에 낸 상고청원서가 계기가 됐다. 연방대법원은 63년 기드온의 상고청원을 받아들였고, 각 주는 다투어 국선변호인을 통한 무료변론 제도를 도입했다.

변호사는 그러나 인권의 보루인 동시에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직업인이기도 하다. 동업자가 많아지면 경쟁도 치열할 수밖에 없다. 10여년 전 캐나다에서는 사무실 대신 밴 승용차에서 일하는 '앰뷸런스 변호사'가 등장해 화제였다. 그는 승용차 안에 서가와 텔레비전, 증거물 녹화용 비디오카메라까지 갖춰놓고 의뢰인의 요청이 오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한국의 변호사 수가 며칠 전 5천명을 돌파했다. 업계에선 이미 부동산·연예·국방·의료 등 특정분야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틈새'형 로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래도 인구 1만명당 1명에 가까운 비율이니 2백50명당 1명꼴인 미국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과연 한국에도 앰뷸런스 변호사가 등장할 수 있을까.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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