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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엄숙'한 이름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스로 옮겼지만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몸담았던 팀이 LA 다저스다. 팀 이름인 '다저(dodger)'의 뜻은 뭘까. 영한사전에서 찾아보면 '요리조리 잘 피해가는 사람''사기꾼''기피자' 등이다.

바로 이상한 생각이 들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런 좋지 않은 이름을 썼을까'.

그 사연은 이렇다. LA 다저스의 전신은 브루클린 다저스다. 뉴욕시의 브루클린은 교통지옥으로 유명했다. 그 브루클린의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잘 빠져다니던 소형차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차의 별명이 바로 '다저'였다. 그래서 브루클린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팀이 생기면서 브루클린의 명물인 다저를 팀 이름으로 썼던 것이다. 그런데 연고지를 동부 브루클린에서 서부 LA로 옮기면서 팀 이름은 그대로 가져왔다.

미국인들에게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아메리칸 풋볼(미식축구)이다. 샌프란시스코를 연고지로 하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는 전통의 강호다. 그 이름도 한번 살펴보자. '49ers', 즉 '49년의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그건 또 뭘까.

미국에서는 1800년대 중반 '골드러시'가 있었다. 서부에서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동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서부로, 서부로 몰려온다. 1849년 한해에만도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박'을 꿈꾸며 서부로 몰려들었다. 바로 이 사람들을 '포티나이너스'라고 불렀다. 그들이 바로 오늘의 샌프란시스코를 있게 한 사람들이다. 사실 '포티나이너스'는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다. 개척정신이 투철했다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체면이나 예절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고 한탕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경멸했던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그들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풋볼팀 이름에 당당하게 붙인 것이다.

한국에도 프로팀들이 많이 있다. 프로야구를 비롯해 프로축구·프로농구팀들이다. 이들의 이름을 한번 보자. 타이거즈(호랑이)·라이온즈(사자)·이글스(독수리)·베어스(곰)·치타스(치타)·와이번스(비룡)·세이커스(송골매) 등 힘센 동물들 일색이다. 동물이 아니라도 자이언츠(거인)·썬더스(번개)·오토몬스(자동차 괴물)·나이츠(기사)·이지스(아테나의 방패) 등 뭔가 강한 이미지를 주는 이름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름에서부터 상대를 제압하려는 듯 강하고, 크고, 무섭고, 그러면서도 멋있고 뜻도 좋다. 작명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굴려 그럴 듯한 이름들을 지어내지만 정작 팬들이나 관중들은 뜻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작명의 기준이 '친근함'이 아니라 '강함'과 '엄숙함'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좋고 한국은 나쁘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외국 프로팀들에도 동물 이름이 많고 팀 이름을 통해 강한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생각은 똑같다. 그러나 지역민이나 팬들에게 친근한 이름, 이들이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이름이냐, 아니면 팬보다는 대기업 총수나 상대팀을 의식한 이름이냐의 차이는 있다.

이름은 무조건 뜻이 좋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보자. 새로 생기는 팀의 이름이 만일 '서울 뺀질이들''부산 문둥이들''인천 짠돌이들''강릉 감자바우들''평양 박치기들''함흥 간나들'이라면 어떨까.

이런 이름에서 애정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제발 '왜 우리 지역을 비하하느냐'는 항의는 하지 말기 바란다. '그래, 우리는 뺀질이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내 할 일 칼같이 잘 하고 취미생활 즐기는 뺀질이다. 얼마나 좋냐'. 뭐, 이런 말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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