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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카드사는 회원관리 개인은 신용관리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경기도 용인에 사는 金모(50)씨는 아들(19)이 金씨 명의의 적금통장을 들고 가 카드를 발급받아 쓴 뒤 1백여만원을 연체하는 바람에 지난 1월 신용불량자로 등록됐다. 金씨는 "나도 모르게 카드가 발급됐고, 연체사실을 통보받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신용불량자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부산에 사는 朴모(52)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19)이 지난해 말 카드를 발급받아 몇백만원의 카드 빚을 지자 가출했다"며 "카드사가 소득도 없는 학생에게 카드를 발급해 가정을 파괴했다"고 원망했다.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센터에 접수된 이같은 민원사례는 신용카드의 부작용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성년자에게 부모의 동의 없이 카드를 발급해주거나▶본인 확인도 안한 채 다른 사람에게 신용카드를 내주거나▶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카드를 발급해주는 등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사례가 끝도 없다. 신용이 바탕이어야 할 신용카드가 신용도와는 무관하게 발급되고, 또 무책임하게 이용된 데서 비롯된 부작용들이다.

◇쏟아진 대책과 우려되는 부작용=금감원은 올들어 크고 작은 신용카드 관련대책을 10건 가까이 발표했다. 미성년자 카드발급을 규제하고, 길거리 회원모집을 금지하며, 오후 7시 이후 빚 독촉을 못하게 한다는 등 종류도 여러가지다. 회원 중 신용불량자가 많은 카드사는 엄중 문책한다는 방침도 내놨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규제만으로는 신용카드 발급과 이용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충분한 검토 없이 대증요법으로 나온 대책들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나올 소지가 크다.

예컨대 카드사 매출액 중 현금서비스의 비중을 2003년 말까지 절반 이하로 규제한다는 방침은 자칫하면 서민의 자금줄을 막아 사채시장으로 내모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

◇근본적 대안 찾아야=신용카드 이용의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신용이 무시되고 있다는 데 있다. 오무영 단국대 교수는 "카드회사의 현 영업행태는 선량한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치므로 시정돼야 하지만 정부가 카드회사의 영업을 좌지우지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드회사의 시장 진입 장벽을 허물어 완전 경쟁체제를 만들어줌으로써 무분별한 카드발급으로 연체율이 높아진 기업은 자연 도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외국계 카드사 관계자는 "한국의 신용카드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지만 회원 관리기법은 취약한 편"이라며 "한 금융기관의 개인 신용정보를 다른 금융기관이 공유할 수 있는 크레디트뷰로(개인신용정보기관) 설립을 서둘러 체계적인 회원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제시했다.

금감원 김대평 비은행검사국장은 과다한 신용카드 수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발급 후 20~30%는 휴면카드로 사장되는 만큼 카드회사는 신규회원 유치보다 기존 가입회원의 사용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불카드 보급과 사용을 늘리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조세연구원 김재진 박사는 "신용카드 남발과 이에 따른 신용불량자 양산은 외국도 겪는 문제"라며 "은행의 잔고 내에서 신용거래를 할 수 있는 직불카드의 사용 확대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진용·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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