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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백가쟁명' 국내 팬터지소설 : 빠른 등단·쉬운 출판 너도나도 작가 데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팬터지 소설은 사이버 공간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소설 연재, 독자의 반응, 작가 등용이 모두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팬터지 소설 흐름은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IT 발달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팬터지 붐을 일으킨 초기작 『퇴마록』(이우혁)과 『드래곤 라자』(이영도)가 모두 PC통신 하이텔에서 연재를 시작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1996년을 전후로 PC통신과 인터넷에 10대와 20대들이 급속히 유입된 후 팬터지 소설의 무궁무진한 시장성을 먼저 간파한 몇몇 출판사들이 팬터지 소설을 오프 라인으로 끌어내며 대중화에 나섰던 것.

출판사의 예상은 적중해 『퇴마록』(전 17권)은 8백만권, 『드래곤라자』(전 12권)는 90만권의 판매고를 올렸다.

더구나 팬터지 소설의 '원 소스 멀티 유스'특성 그대로 드래곤 라자는 만화와 게임으로, 퇴마록은 영화로 제작됐다. 지난해 서울대 도서관 등 대학 도서관 대출 순위 1위를 기록한 『묵향』(전동조)의 경우 대만의 게임회사가 판권을 사 게임으로 제작 중이다.

팬터지 소설의 오프 라인 출판이 일반화한 요즘에도 온라인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최근엔 라니안(www.lanian.net) 등의 사이트가 떠오르고 있다. 게다가 다음·프리챌 등 주요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인기 팬터지 작가와 소설의 팬클럽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팬터지 소설의 성지로 꼽히는 PC통신 하이텔의 창작 연재 코너가 여전히 주요한 활동 무대로 자리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PC통신이 인터넷 때문에 뒷전으로 밀린 것과는 대조된다.

이처럼 팬터지 소설 사이트는 기성 문단의 문예지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응의 직접성(조회수), 등단의 수월성 면에서 인터넷은 단연 우위다.

특히 작품 평가가 조회수·독자 게시글 수 등으로 정해지는 점은 팬터지 소설만이 갖는 특징이라 하겠다.

팬터지 소설 시장의 빅뱅은 '팬터지 거품론'이란 우려를 낳기도 했다.

도서 대여점 수요를 포함해 최소 5천~1만부 이상 팔리는 데다 흥행에 성공하면 시리즈 판매가 보장되는 만큼 여러 출판사들이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작가들을 입도선매하듯이 데려다 기획 출간하다 보니 독자들이 식상하기 시작했다. 『드래곤 라자』가 성공한 98년 이후 작품을 출간한 팬터지 소설 작가가 5백여명에 이를 정도다.

따라서 팬터지 소설이 제2의 도약기를 맞고 단순 오락물이 아니라 문학 장르의 하나로 대접받으려면 양적 팽창에 걸맞은 질적 도약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인터넷 서점 등이 주체가 돼 운영하는 팬터지 소설상 등이 질적 수준을 담보하는 등단 제도가 될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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