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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금이 아까운 '오페라연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최근의 창작 오페라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다. '백범 김구''이순신''녹두장군''유관순' 등 위인전류 오페라와 '산불'(차범석 원작)처럼 연극 대본(희곡)을 오페라화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추모사업의 열기와 애국심에 호소하고, 후자는 원작 희곡의 예술성을 내세워 정부지원금이나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제작비에 충당한다.

오태석의 동명 희곡을 오페라화한 나인용의 '부자유친'은 후자에 속한다. 지난 20~24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을 보면서 창작 오페라의 지원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작곡가가 동료 작곡가의 작품을 심사하고, 성악가가 동료 성악가가 출연할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으로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다. 더 나아가 연극으로 성공을 거둔 희곡을 오페라화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법은 아니라는 사실도 실감했다.

오태석이 직접 연출을 맡은 오페라'부자유친'은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을 다룬 작품. 무대연출이나 조명은 오페라 무대에서 보기 힘든 수작(秀作)이었고 무대 뒤에서 상황설명을 도운 무반주 합창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희곡 원작을 별다른 수정 없이 오페라 대본으로 사용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주인공의 아리아와 피날레 합창을 보태 오페라다운 면모를 갖추려고 했으나 별 효력이 없었다. 작품 전체가 레시타티보나 대사 위주로 흘렀기 때문이다.

레시타티보가 장황하게 펼쳐지다보니 음악적인 즐거움을 주기는커녕 대사 전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필요 이상의 대규모로 편성된 오케스트라 반주가 들려준 음악도 흐름이 없는 나열에 불과했다. 주역과 조역이 12명이나 대거 출연하는 원작 대본의 '희생' 없이는 오페라의 성공은 기대하기 힘들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음산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부수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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