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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장미'는 전범인가 희생양인가 히스토리채널, 25일 對미군 선전방송한 日 아나운서 추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도쿄 로즈(Tokyo Rose)'.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주둔한 태평양 일대에 영어로 선전 방송을 하던 일본쪽 여성 아나운서들을 말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군이 붙여준 이 애칭은 '도쿄의 장미'라는 뜻과 달리 전쟁과 배신·누명 등의 추악한 음모들로 얼룩져 있다.

당시 20명이던 도쿄 로즈들은 유혹적인 목소리로 미군 병사의 탈영을 책동하고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선전 공작에 나섰다. 미군들은 이를 오락 프로그램쯤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도쿄 로즈들은 종전 후 전범(戰犯)으로 몰려 험난한 삶을 살아갔다.

이들은 과연 적을 심리전으로 유혹한 죄인인가, 아니면 전쟁의 희생양인가. 히스토리 채널은 바이오그래피 특집 '도쿄 로즈-아이바 도구리'(25일 밤 9시)편에서 멤버로 활동했던 아이바 도구리(86)의 삶을 추적해 관심을 끈다.

아이바는 부유한 일본인 부모를 둔 1.5세 미국인이었다. 미국 LA에서 태어난 아이바는 UCLA에 진학, 의사가 되기를 꿈꿨다. 그러나 부모가 졸업 선물로 준 일본여행 티켓이 그녀의 운명을 바꿔 놓고 말았다. 1941년 일본을 방문한 그녀는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일 감정이 최악으로 치닫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생활이 어려워진 그녀는 생계 수단으로 '라디오 도쿄'의 여성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종전 후 4년이 지난 49년 전범을 단죄하라는 미국 여론에 밀려 그녀는 '일본의 앞잡이'라는 죄명으로 미국 법정에서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후 그녀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20여년을 싸웠다. 마침내 76년 특별 사면되면서 미국 시민권을 되돌려 받은 그녀는 현재 시카고에서 상점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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