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팔레스타인 민병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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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베들레헴=이훈범 특파원] 하산 라얄라(30)는 팔레스타인 민병대 중 하나인 알 아크사 순교자 여단의 전사다.

3년 전까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던 터라 나이 어린 동료들에 비해 '성전(聖戰)' 경력이 짧은 늦깎이다.1967년 '6일 전쟁' 때 고향을 등진 부모가 정착한 베들레헴 인근 디헤셔 난민촌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감치 전사의 길로 들어선 친구들과 달리 학업에만 전념했다. "총을 잡기보다 팔레스타인이 독립하면 정부에서 민족을 위해 더 큰 일을 하라"는 부친의 간곡한 당부 때문이었다.

하지만 99년 말 터진 사건 하나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절친한 대학 동료와 길을 걷다 이스라엘군의 불심검문에 걸렸다. 불온전단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동료는 바닥에 넘어뜨려져 발가벗기고 짓밟힌 뒤 수갑이 채워져 개처럼 끌려갔다." 며칠 뒤 시체로 발견된 동료를 보고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 길로 순교자 여단을 찾아가 총을 지급받았다는 하산은 "이건 전쟁이 아니라 범죄고, 이슬람에 대한 모욕"이라며 증오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인티파타가 왜 다시 일어났는지 아는가. 샤론이 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원에 들어가서가 아니다. 그 이전 몇달 동안 이스라엘군이 매일 밤 집에 들어와 아이들 책가방까지 뒤졌다. 늘 겪는 일이라 아이들은 아버지 목에 총부리가 겨눠져도 놀라지 않는다. 군화에 공책이 짓이겨지고 연필이 부러지는 것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군인들이 나가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것들을 다시 책가방에 집어넣는다. 어느 아버지가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M60 기관총을 멘 동료 하나가 또 다른 분노를 터뜨린다.

"이스라엘군은 하교 길의 여고생들에게 최루탄을 쏜 뒤 혼비백산해 달아나는 모습을 보며 낄낄거린다. 항의하는 사람에게는 개머리판이 날아오기 일쑤다."

자신들을 모독하는 이스라엘군의 행동에 대한 팔레스타인 전사들의 규탄은 끝이 없었다. 유언비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심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것에 과장이 섞였든 아니든 일부 이스라엘군의 지나친 행동은 이스라엘 내에서조차 문제가 되고 있다. 올 초 산부인과에 가려던 임산부 한명이 검문소 통과를 거부당해 태아를 사산한 사건에 대한 군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너를 죽일 수는 있어도 통과시킬 수는 없다"고 한 군인의 말은 이스라엘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산에게 "명령이 있으면 자살 테러를 하겠느냐"고 물었다. "오직 신만이 알 뿐"이라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신이 모욕당했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죽음보다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것은 분쟁이라는 불꽃에 끼얹는 기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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