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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수법… 배경 든든한 용의자 의문의 여대생 H양 살해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서울 강남에서 실종된 미모의 여대생이 변두리 야산에서 끔찍한 시체로 발견돼 사건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피해자인 H양(22)은 명문여대 법학과 4년생. 범행 수법은 잔인하기 짝이 없고, 용의선상에 올려진 인물들은 모두 배경이 든든한 청년들이다.

유일한 단서는 H양이 집을 나설 때 폐쇄회로TV에 찍힌 한 남자의 스쳐 지나가는 어렴풋한 모습뿐이다.

◇엽기적 범행=H양이 실종된 건 지난 6일 오전 5시37분. 집 부근 헬스클럽에 운동을 하러 강남의 아파트를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열흘 뒤인 지난 16일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의 등산로에서 쌀부대에 담겨진 시신으로 발견됐다. 손발이 비닐테이프로 묶이고 눈과 입은 청색 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눈에 두발, 귀에 두발, 뒤통수에 두발 등 모두 여섯발의 인마살상용 공기총 탄환이 박혀 있었다.

사건을 맡은 강남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범인이 총구가 머리에 닿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쐈으며, 숨진 걸 알고도 총살형을 집행하듯 남은 탄환을 다 썼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부검 결과 H양이 실종 1주일쯤 뒤인 14일께 검단산 등산로에서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시체의 얼굴과 옷 매무새가 깨끗해 생존시 자유롭게 몸을 씻고 용변을 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별다른 저항 흔적이 없어 면식범에 의해 감금됐다고 본다.

◇용의선상의 세 남자=경찰은 일단 치정에 의한 원한이 살해동기일 것으로 보고 세 남자를 용의선상에 두고 있다.

H양이 고교시절 과외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A씨. 그는 지금 법조인으로 결혼도 했지만 A씨의 처가쪽에서 H양과 그의 관계를 줄곧 의심해 왔다.

오죽하면 H양의 아버지가 지난해 서울지검에 'A씨의 장모가 딸을 미행하고 밤마다 전화를 걸어 괴롭힌다'며 고발하고,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H양이 대학 1년 때 동아리에서 만난 명문대 법대생 B씨도 용의자 중 한사람이다. 한때 고시공부를 함께 하며 가깝게 지냈으나 최근 자주 다툰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H양과 선을 본 변호사 C씨도 있다. 그는 A씨의 법대 동창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생. C씨는 맞선 때 호감을 가졌으나 H양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치밀한 범죄=범인은 H양에게 사용한 테이프의 접착면에조차 지문을 남기지 않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경찰은 "범인이 범행 장소를 수차례 사전 답사했으며 살해 장소가 도로와 인접한 곳인데도 총을 여섯발이나 쏜 것으로 미뤄 기차 경적소리가 울릴 때 발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이 H양의 새벽운동 습관을 아는 2명 이상의 면식범일 것으로 보고 사건 당일 새벽 강남 일대를 과속으로 달리다 적발된 차량과 H양의 휴대폰 발신자를 추적 중이다. 청부살인 가능성도 수사 중이다.

H양 가족과 친구들은 "고시공부를 열심히 했고, 경우도 밝았다"며 슬픔에 잠겨 있다.

성호준·백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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