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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슬픈 외국인 노동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중국동포 김인성씨는 자신의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분신자살했다. 회사 복도 벽에는 사장의 이름을 적시하며 '나쁜 놈 김○○ 천벌을 받는다. 내 영혼이 영원히 너를 괴롭힌다. 한국이 슬프다'고 적어놓았다."

경기도 성남에서 외국인 노동자교회를 열고 있는 김해성 목사와 사진작가 김지연씨가 지난해 말 출간한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 는 이렇게 원망과 저주의 말로 시작한다. '외국인 노동자와 중국동포에 관한 통한의 기록'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코리안 드림을 찾아 몸뚱이 하나로 한국에 온 그들의 힘겨운 삶이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오는 25일부터 두달간의 불법체류 외국인 자진신고 기간이 최근 공고됐다. 이 기간이 끝나면 단속이 시작돼 정부 단속반과 불법체류 외국인간에 연례적인 숨바꼭질이 벌어질 판이다. 특히 올해는 월드컵 축구대회와 부산 아시안게임을 틈타 불법취업하기 위해 입국하는 외국인이 크게 늘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을 경우 현재 26만1천명 수준인 불법체류자가 연말엔 35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고 정부는 긴장하고 있다.

단순 기능인력 수입을 금지하는 우리나라에 산업기술연수생이란 편법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다. 말만 연수생이지 단순 기능인력인 이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업장을 이탈, 스스로 불법체류자의 대열에 합류해왔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 들어온 연수생 11만여명 중 절반이 넘는 6만5천여명이 이탈했으니 알 만하다. 나머지 불법체류자는 대부분 관광이나 방문목적 입국자다. 지난 16일엔 단체관광객으로 입국한 중국인 43명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지기도 했다.

외국인 노동자는 입국 과정에서의 부정·비리, 국내 노동시장의 왜곡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최악의 인권 상황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란 말이 나오면 곧 '인권 사각지대'와 함께 저임금·임금체불·산업 재해·구타·욕설·성폭행 등의 단어가 따라 다녔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필요에 따라 강제로 추방될 수 있는 존재로 취급돼 왔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 인권백서'에 나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64.1시간으로 국내 법정 근로시간 44시간보다 20시간이나 많다. 이들 대부분이 잔업과 특근을 하고, 심지어 36시간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산업재해에도 무방비 상태여서 1998년부터 2001년 8월까지 모두 3천5백85이 산업재해를 당해 이 중 1백30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과 인종 차별에 관해서는 기막힌 사연들이 수도 없이 전해온다. 이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 뺨 맞기 등 모욕 견디기 훈련을 받는다고도 하고, 한국어 실용회화로 "우리도 사람이에요" "왜 나를 때려요"란 말을 배워온다고도 한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한 남자는 한국에 들어와 가장 먼저 배운 말이 "니네 나라로 가, 이 새끼야"였다고 증언한다. 이런 일들이 인권국가라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믿어지는가.

정부 입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인정하자니 신경쓰이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계륵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국내 노동시장의 빈 구석을 메우는 소모품일 수는 없다.

방용석 노동부장관은 18일 업무보고에서 "새로운 외국인력제도를 상반기 중 도입토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 제도엔 중소제조업체가 합법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불법 체류자도 심사를 거쳐 적법한 신분으로 바꿔주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둘러싼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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