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있는 한국사 주목! 대안 교과서 현장교사들이 쓴 中學 교재 첫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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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 '대안 교과서'라는 설명이 붙은 이 책을 만든 교사들은 그러면

기존 국사 교과서를 죽어 있다고 보는 것일까? 최소한 국정(1종) 교과서가 학생들 앞에서

살아 숨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 이러한 평가는 학생들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사 교과서는 왜 살아 숨쉬지

못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에는 수많은 사건·제도·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막상 인간의 삶은 없다. 또 10대 학생의 눈높이 대신 어른들의 시선만이 있다. 그러니 기존 국사 교과서는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우리는 재미없고, 외울 것만 많은 교과서나 개설서를 요약하는 듯 죽은 지식의 나열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 앞날개에 실린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이 글은 음미해볼 만하다. 교과서가 책가방 속에만 있는 책, 졸업과 함께 창고에 틀어 박히는 책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언제든지 교양서로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해 초 교사들과 출판사가 의기 투합, '21세기를 여는 새로운 개념의 한국사 교과서' 편찬을 결의함으로써 탄생한 중학교 과정용의 이 책은 "교과서 편집이야말로 당대 단행본 출판의 꽃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떠올린다. 한눈에 보아도 이 책은 판형과 활자·지질, 서술 내용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1종·검인정 교과서와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명문 출판사 갈리마르에서 양질의 교과서 단행본을 생산해 내듯,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점은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펴낸 전국역사교사모임 교사들이 "교과서는 교사가 써야 한다"고 말하는 근거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은 1,2권의 첫 단원과 마지막 단원에서도 잘 드러난다. '역사는 왜 배우나요?''민족의 형성과 민족 문화''19세기의 저녁, 21세기의 아침''21세기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단원의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역사란 무엇이며,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필자들의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항목마다 '청소년의 삶과 꿈''역사의 현장''여성과 역사' 같은 꼭지들을 집어넣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스타일이 묻어나는 이야기체 서술방식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교사 자원을 길러내는 교원대에서 역사교육학을 강의하는 필자가 이 책을 환영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정말로 살아 숨쉴 수 있는 것일까? 그 대답은 아직은 보류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책이 학교 현장의 사정을 잘 아는 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바로 그 점이, 아무런 제도적 간섭을 받지 않은 대안 교과서로서 이 책의 자유로운 발상을 제약했을 수도 있다. 보조단에 나오는 인물소개와 '저요 저요' 코너는 그러한 우려를 하게 한다. 혹시 필자들은 학생들이 '낱말 맞추기 퍼즐'이나 '골든벨' 같은 퀴즈를 좋아한다는 데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이 대안 교과서가 기존 교과서와 충돌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외려 호환가능하다는 점, 기존 수업의 진도 맞추기와 잘 어울린다는 점, 그리고 중등과정 교과서이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무리한 학설을 거의 반영하지 않은 신중함 등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가 정말로 살아 있는지 대한 대답은 앞으로 이 책을 읽을 학생들의 몫이고, 교사들의 몫이다. 어쩌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살아 있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등장할 수많은 대안 교과서의 하나라는 데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훌륭한 대안 교과서이다. 그리고 이제 국사 교과서는 오직 한 권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해석과 글쓰기·구성이 담겨질 수 있도록 다양화돼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책은 그런 길로 나아가는 첫 걸음일 뿐이다. 앞으로 연차적으로 나올 세계사·과학 분야의 대안 교과서 출판도 기대해 본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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