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가족에게 인정 받고 싶다” 앞치마 두른 50대 남자들
앞치마는 어색했고 칼질도 서툴렀지만 요리를 대하는 자세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왼쪽부터 박승철·정석원·권우현씨.
왜 요리를 배우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대답이 많이 돌아왔다. 정석원(57·무역업)씨는 “이제껏 얻어먹기만 했는데 퇴직하면 차리기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요리를 배워서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친구에게 뭔가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승철(55·교수)씨는 “요즘은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이라며 “잘 만든 요리로 아이와 아내한테 인기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의 대답에선 절박함이 느껴졌다.
나이가 들수록 연륜은 깊어지지만 요리만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이번 강좌에 참여한 최고령자인 윤윤섭(69·사회단체 근무)씨는 “밥 못 짓고 라면도 못 끓인다고 집사람에게 하도 구박받아서 왔다”며 “아들이 샌드위치 배워와서 해주니 손자한테 ‘인기짱’이 되는 것을 보고 부러웠다”고 말했다. 강좌가 시작됐다. 어르신들은 저마다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한 장씩 들고, 시험공부하듯 몰두했다.
칼 잡는 법부터 … 꼼꼼히 가르치는 남성 맞춤형 강좌
요리실습 시간. 칼도 처음 잡아본다는 ‘아버님’은 난감한지 뒷짐을 쥐고 서 있었다.
강의에선 주부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소고기는 조금 얼려야 썰기 좋아요. 그리고 썰 때는 이렇게 손끝을 오므려야 안 다쳐요. 계량 스푼을 쓸 때는 위를 반듯이 깎아서 재야 정확해요.”
아버님들은 눈을 떼지 않고 강사의 손놀림을 지켜보며 꼼꼼히 종이 위에 적어 넣었다. 질문도 쏟아졌다. “양념은 종이에 적힌 것처럼 순서대로 넣어야 하나요.” 한 수강생이 “이 요리는 어떤 술과 잘 어울리나요”라는 질문이 나온 뒤에야 웃음이 터지며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소고기 구이와 파무침, 취나물 볶음(아래)
그들은 직접 만든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박승철씨는 “생각보다 꽤 맛이 좋다”며 “집에서 매일 만들라고 하지 않을지 걱정”이라며 웃었다. 이동섭(55·회사원)씨가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는 “대파 2조각 썰었는데 팔이 뻐근하다”며 “집사람에게서는 전혀 못 들었는데 이제야 고충을 알겠다”고 말했다. 이번 강좌의 마지막은 설거지였다. 이 원장은 “요리는 만들고 먹는 것뿐만 아니라 치우는 것까지 해야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윤섭씨는 “솔직히 설거지도 처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TIP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
부엌칼도 처음 잡아보는 50대 이상 남성을 대상으로 요리교실을 네 차례 진행한 지미원 이홍란 원장이 조언하는 ‘초보 아버님’ 요리 비법. ①계량 단위를 이해하고 계량 스푼·컵을 준비하라. ②김치찌개·콩나물밥 등 쉬운 요리부터 도전하라. 칼질이 서툴다고 칼질 연습만 하면 금세 요리가 지루해진다. ③설거지도 꼭 손수 하라. 요리를 해주고도, 설거지를 안 하면 아내는 “정리도 안 할 바엔 내가 하지”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