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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파동 다시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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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먼바다 밑에서 퍼 올린 모래는 비싸고 입자도 가늘어 쓰지 않고 옹진 앞바다에서 파낸 모래 재고분에 부순 모래(석재를 부수어 만든 모래)를 섞어 사용하고 있다."

인천의 신공항레미콘 직원 K씨는 요즘 자연산 바닷모래를 구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수도권 레미콘업체 상당수는 인공적으로 가공한 부순 모래를 쓰면서 레미콘 품질 기준을 맞추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모래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일부에선 판교.김포.파주 등 신도시 건설이 본격화하면 모래 파동이 재연될 것으로 우려한다.

◆ 실태=모래 채취 업체들이 하천이 흘렀던 논바닥이나 육지에서 370km까지 떨어진 먼바다(EEZ, 배타적 경제수역) 밑을 파헤칠 정도로 모래 부족은 큰 문제가 돼 왔다. 강사(江沙)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래는 40여년간 국토.산업개발용으로 쓰여 거의 고갈됐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 수요의 70%를 공급했던 인천시 옹진군과 충남 태안군의 해사(海沙) 채취가 올해 초부터 환경단체.지역 주민 등의 반발로 차질을 빚으면서 모래 부족은 한층 심각해졌다.

골재협회 관계자는 "인천에서 지난해 말 ㎥당 7200원 하던 모래값은 최근 공급이 달려 1만4500원으로 100%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수도권 밖에서도 모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부산 신항만 공사는 매립용 바닷모래가 부족해 착공이 늦어지기도 했다. 통영시는 어민 반발 등을 이유로, 국방부는 '군사작전 구역'을 들어 매립용 바닷모래 채취를 막았기 때문이다. 춘천지역 레미콘 업체들은 지난달 "대규모 아파트 건설 현장이 느는데도 모래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 공급이 부족하다"며 이례적으로 춘천시에 외부 반출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건설공사 현장의 '모래 부족' 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 레미콘공업협회 관계자는 "현장에서 모래를 제때 공급받지 못해 공기가 지연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태안.옹진 앞바다에서 모래 채취를 재개하되 환경 오염과 어장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환경단체.지역 주민과 협의 중이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태안군이 750만㎥, 옹진군이 264만㎥의 모래 채취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며 "두 곳에서 모래 채취가 재개되면 모래값도 점차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 모래 부족 오래 갈 듯=그러나 모래 채취는 환경 규제 등 구조적인 이유로 갈수록 어려워질 전망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최근 '모래 수입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2002년 8월 전남 신안군이 바닷모래 채취를 전면 중지한 것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바닷모래 채취를 꺼리고 있다"며 "모래 수급 불균형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수입 활성화 방안 등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성에 이은 판교.김포.파주.이의 등 2기 5대 수도권 신도시 건설, 연기금 투자로 크게 늘어날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공사, 10여개의 기업도시.혁신도시 건설에 대비해 치밀한 골재 수급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쌍용양회 관계자는 "바닷모래 채취도 어렵고 수입도 여의치 않다면 정부가 재활용 골재 등 대체재를 다양하게 조달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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