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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고용허가제-그후 100일] 기업, 적은 비용으로 '알짜 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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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취업자격을 갖춰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은 외국인을 고용해 보니 작업 진행속도가 빨라지는 등 산업연수생에 비해 채용효과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더 채용하고 싶어도 어쩐 일인지 인력 공급을 받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지난 9월 1일 고용허가서를 받고 입국한 필리핀인 무나르 데미 로사리오(右)가 경기도 부천의 휴대전화 배터리 성형회사인 청명테크노스 생산라인에서 외국인 여성 근로자 2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부천=안성식 기자

지난 8월 노동부의 외국인 고용허가 업체로 승인받아 필리핀 근로자들을 채용한 중소기업 C사의 인사 담당자는 지난 3개월여의 고용허가제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 도입에 대한 정부부처 간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업무협조가 부진한 게 원인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지난 8월 31일 고용허가제를 통해 92명의 필리핀 근로자가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지 100일(12월 11일)이 지났다.

새 제도를 통한 외국인 근로자 도입 실적은 아직 저조하다. 하지만 이 제도를 통해 근로자를 쓰고 있는 500여 업체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기업을 이탈할 가능성이 작아 숙련공으로 키울 수 있는 데다 고용비용도 불법체류 외국인이나 연수기간이 지난 산업연수생보다 별로 많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 고용허가를 신청하기 전에 한달 동안 내국인 채용노력을 증명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알짜만 골라 뽑는다=휴대전화 배터리 커버를 만드는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의 ㈜청명테크노스는 61명의 근로자 가운데 30명이 외국인이다. 이 가운데 9명은 고용허가제 시행 뒤 들어온 인력이고, 나머지는 불법 체류하다 자진신고한 뒤 출국시한을 연장받은 사람들이다. 이 회사는 고용허가제로 정부로부터 추천받은 50명 중 전자공학 등 회사와 관련된 분야의 대졸 기혼자만 추려 9명을 뽑았다.

황상철 인사총무부장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인력들이 모두 관련 업종의 대졸자여서 이해력이 아주 높다. 회사로선 알짜 고급인력을 골라 뽑을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회사도 지난해까지는 산업연수생을 받았다. 하지만 부작용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황 부장은 "3만~5만원만 더 주겠다면 한마디 말도 없이 회사를 옮겨버리는 거예요. 심지어 회사 이탈을 부추기는 전문 브로커까지 생겨나 회사로선 이만저만 골치가 아니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보장하는 데다 과다한 송출비용이 들지 않아 이들이 불법 체류자로 변할 요인이 작다.

또 기업이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당초 취업한 업체를 떠날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들여오기가 어렵지만 장기간 고용해 숙련공으로 키울 수 있고, 그만큼 생산성도 더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 비용도 많이 안 들어=고용허가제를 꺼리는 많은 기업은 4대 보험을 다 적용해야 하는 등 관리비용이 많이 드는 점을 꼽는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기업들은 관리비용이 예상보다 적다는 점에 놀라고 있다. 산업연수생제에서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숙식을 해결해주고 각종 편의시설까지 모두 제공해야 했지만 고용허가제 아래에서는 모든 숙식을 본인이 해결하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에드가르도(필리핀.35)는 "어차피 보증금은 내가 나갈 때 가져가는 거고, 나머지 편의시설도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시 엘칸텔레콤 노경환 과장은 "동종 업체에서 고용하고 있는 외국인 연수생이나 불법체류자 근로자 등과 비교해도 비용이 오히려 적게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지난달 인도네시아인 6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비용 문제보다 아예 일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 생산성이 높다는 게 강점이다.

지난해까지 연수생을 고용했다 올해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한 금형 제작업체 K사 관계자는 "이들처럼 이해력이 빠르고 숙련된 사람을 국내 근로자로 쓰려면 아마 비용이 두 배는 더 들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비용절감 효과가 더 크다는 말이다.

◆ 외국인 근로자 대우 좋아져=지난해 9월 고용허가서를 받고 입국한 필리핀인 베르길(31)은 "연수생으로 들어온 친구에게 들어보니 한국 올 때 송출비로 5000달러 넘게 돈을 썼다고 하던데 나는 항공료와 서류비용 등을 모두 합쳐 1000달러도 안썼다. 그래서 그 친구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 그는 매달 월급(110만원 안팎)의 대부분인 80만~90만원을 꼬박꼬박 집으로 보내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들은 '본전'을 벌기 위해 불법 체류자로 빠질 가능성은 작은 것이다.

고용허가서를 갖고 입국한 필리핀인 마이템 롤란 베르나레스(31)는 "이탈하면 불법 체류자가 되는데 왜 나가요◆ "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월급도 연수생과 비슷하고 무엇보다 고용보험.산재보상 등 4대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고, 퇴직금까지 출국 때 챙길 수 있으니 직장을 나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 회사는 이들에게 국내 근로자 못지않은 대우를 해주고 있다. 플라스틱 사출업체인 C사는 근무 1년째 되는 내년 8~9월께 10일가량의 본국방문 휴가를 줄 계획이다.

물론 항공료와 가족에게 줄 선물도 손에 쥐어줄 작정이다. 필요하면 가족을 이곳으로 초청해 한국관광도 시켜줄 방침이다.

그래서인지 내년 5월이면 출국해야 하는 필리핀 국적의 크리스틴(28.여)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고 했다.

김기찬 기자 <wolsu@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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