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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첫 구절, 끝 구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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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말 그대로 유령처럼 음산하게 첫 운을 뗀 공산당선언은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사슬밖에 없고, 얻을 것은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격정적인 호소로 끝을 맺는다.

1848년 유럽의 한 모퉁이에서 29세의 마르크스와 27세의 엥겔스가 40쪽이 채 안 되는 문건 하나를 내놓았을 때, 그것이 20세기를 혁명과 전쟁의 피바다로 몰아넣게 될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1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공산당선언의 붉은 이념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핏빛 반달리즘(vandalism)을 역사의 유물로 남긴 채 ‘유령처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잃은 것은 자유요, 얻은 것은 독재와 빈곤의 사슬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늙고 병든 유령은 유독 21세기의 한반도를 아직껏 떠돌고 있다. 저 북녘 얼어붙은 땅에서, 그리고 이 남녘 어딘가에서도.

“우리는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자주적 민족임을 선언한다.” 첫 구절에서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을 밝힌 3·1독립선언문은 끝 구절에서 겨레의 미래를 향한 오늘의 다짐을 천명한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다.”

자주적 주체성과 독선적 폐쇄성을 분간하지 못하는 극단의 민족주의자들은 모름지기 기미년의 장중한 첫 울림을 깊이 음미해볼 일이다. 거기에는 강대국의 눈치만 흘낏거리는 사대적(事大的) 굴종의 모습도 없거니와, ‘우리 방식대로’나 ‘우리 민족끼리’의 옹졸한 국수주의(國粹主義)도 찾아볼 수 없다.

아울러 오늘의 소임과 내일의 비전을 제쳐둔 채 오로지 어두웠던 과거사를 파헤치는 데 골몰하는 정의의 투사들도 독립선언문의 끝 구절에 성찰의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겠다. 패망한 조국, 무능한 지도층, 친일 매국노들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간” 옛 어른들의 지혜에.

“선제(先帝)께서는 나라와 역적이 함께 설 수 없고 왕업(王業)은 천하의 한 모퉁이에 주저앉을 수 없다 여기시어, 신에게 역적을 치라 명하셨습니다.” 제갈공명의 만고명문 후출사표(後出師表), 그 첫 구절이다. 분열된 제국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침상에 누워도 편치 않고 음식을 먹어도 입에 달지 않을 만큼(寢不安席 食不甘味)’ 노심초사하던 공명은 첫 구절에서 통일의 역사적 대의명분을 분명히 한 뒤, 마지막 구절에서 전쟁터로 향하는 각오를 이렇게 밝힌다. “신은 몸을 굽혀 온 힘을 다할 뿐, 오직 죽어서만 그칠 따름입니다.” 탁월한 지략가인 제갈량도 나라의 안보와 통일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하물며 핵무기와 마주하고 있는 우리일까?

6·25 동족상잔 60주년, 바로 그 6월이다.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처럼 “칼을 녹여 쟁기를,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평화의 날을 더없이 소망하지만, 동족의 젊은이들을 어뢰로 몰살시키는 선군(先軍)이 북에 버티고 있는 한 불행하게도 아직은 칼을 갈고 창날을 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민족끼리’의 섬뜩한 실체다.

좋은 전쟁도 없고, 나쁜 평화도 없다(벤저민 프랭클린). 그러나 나라를 수호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좋고 나쁘고의 차원이 아니다. 불가피한 역설(逆說)이다. 그 역설 때문에 국민들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힘겹게 국방비를 대는 것이다. 그 역설이 두렵다면 핵탄두 앞에 구걸하는 ‘비굴한 평화’ 또는 빼앗기듯 퍼주는 ‘안보의 뒷거래’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굴종이다. 묘지의 정적(靜寂)을 평화라 할 수 있는가? 거기에 자유와 진보가 있을 리 만무하건만, 그것을 좋은 평화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자유와 진보의 깃발을 내흔들며 시대를 속이고 있다.

독재와 빈곤의 아픔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절이다. 민족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이들이 ‘전쟁이냐 평화냐’의 자극적 선동에 움츠러들어 ‘자유냐 굴종이냐’의 엄숙한 고민을 회피한다면, 그리고 ‘불바다·전면전·무자비한 타격’ 따위의 심리전에 기죽어 ‘자유의 가치’를 포기하고 그저 당장에 편안한 ‘굴종의 현실’을 선택한다면,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진로를 바꾼 역사적 선언들은 그 첫 구절부터 예사롭지 않고, 끝 구절 또한 의례적인 에필로그가 아니다. 삶을 뒤흔들고 의식을 일깨우는 영혼의 내출혈(內出血)이다. 공산당선언의 역사적 모순, 독립선언서의 진취적 주체성, 그리고 후출사표의 절절한 우국충정이 보훈의 달, 현충(顯忠)의 가슴에 새삼 숙연하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