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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룡, 월드컵 본선 ‘무실점 데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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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리스전 골키퍼 장갑을 낄 선수가 확정된 것은 경기 당일 오전이었다. 김현태 골키퍼 코치는 먼저 이운재의 방을 찾아 어렵게 입을 뗐다. “운재야, 성룡이가 나가게 될 것 같다.” 이운재는 담담하게 말했다. “성룡이가 준비 잘 돼 있습니다. 잘 해낼 겁니다.” 사실 김 코치의 마음은 스페인과의 최종 평가전(6월 4일)이 끝난 뒤 정성룡(25·성남 일화·사진)으로 기울어 있었다. 큰 키(1m90cm)와 긴 팔, 상승세를 탄 컨디션. 제공권이 중요한 그리스전에 제격이었다. 다만 월드컵 같은 큰 경기 경험이 없다는 게 약점이었다. 하지만 정성룡은 월드컵 본선 데뷔전을 멋지게 치러냈다. 좌우 측면에서 쉼 없이 날아오는 크로스와 프리킥·코너킥을 그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처리해 냈다. 또한 그리스의 두 차례 결정적인 슈팅도 반사적인 몸놀림으로 막아냈다. ‘경험 부족’이란 불안감은 기우였다. ‘포스트 이운재’ 정성룡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정성룡은 아내 임미정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있지? 사랑이도 잘 있고?” 아내는 아르헨티나전이 열리는 17일 출산을 앞두고 있다. 태명은 사랑이. 아들이다. 어린 시절 정성룡은 지독하게 가난했다. 아버지는 기와 쌓는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지만 빚이 많아 사글세를 내기에도 빠듯했다. 아버지는 축구 선수 아들에게 맛있는 것을 충분히 먹여주지 못한 걸 늘 가슴 아파했다. 그러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이왕 축구를 시작한 것, 후회 없도록 끝까지 해 보라”며 아들을 응원했다. 그랬던 아버지가 정성룡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성룡은 이때 다짐했다. ‘반드시 성공해서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이날 이후로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다. 서귀포고를 졸업하고 포항에 입단해 기량을 키웠다. 2004년과 2005년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2006년 26경기에 나서며 맹활약했다. 그는 이듬해 포항의 K-리그 챔피언 등극에 일조하며 ‘파리아스 매직’의 중심에 섰다. 2008년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은 첫 경기인 칠레전에서 정성룡은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임미정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도 2008년의 일이다. ‘나는 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성룡의 휴대전화 초기화면에 적혀 있는 문구다. 그의 꿈은 ‘월드컵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다. 포트엘리자베스=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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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성남일화천마 축구선수(골기퍼(GK), 01번)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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