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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한국 프랑스 음식과 예술로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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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래 기다리셨죠. ‘아트센터 나비’의 노소영 관장입니다. 비오는 토요일 오후, 월드컵 축구 한국전 경기를 제치고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열리는 예술과 음식의 만남, 그 새롭고 흥미진진한 만찬의 막을 올립니다.”

서울과 프랑스 엉겡레뱅의 음악, 요리 퍼포먼스가 디지털 기술로 결합했다. 그룹 ‘비빙’의 연주에 맞춰 양국 무용수가 동시에 춤 췄다.

한국 대 그리스 월드컵 예선전이 치러진 12일 오전 12시 30분(한국시간 12일 오후 7시 30분), 프랑스 파리 북서부 도시 엉겡레뱅의 연회장 ‘페르골라 노바’에 서울 광장동 W호텔 키친에서 영상 편지가 도착했다. 대형 스크린에는 음식 재료와 조리도구가 펼쳐진 식탁과 무대가 나타났다. 엉겡레뱅은 한국으로 치면 과천쯤 되는 파리 근교의 온천·카지노 도시. 12~19일 제5회 디지털아트축제 ‘뱅뉘메리크’를 기획한 엉겡레뱅 디지털 아트센터(예술감독 도미니크 롤랑)는 올해 한국을 특별손님으로 초대해 대륙 간 만찬 ‘방케 엥테락티프’를 벌였다.

이날 행사 실무를 맡은 주불한국문화원(원장 최준호)과 아트센터 나비는 하루가 다르게 첨단 기술을 뱉어내는 하이테크놀로지에 인간적인 숨을 불어넣기 위한 콘텐트로 ‘음식+예술’을 선택했다. 두 나라에서 실시간으로 같은 재료의 음식을 요리해 나눠 먹으며 음악과 춤을 즐기는 자리는 참석자들에게 서로 바로 옆에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장영규씨가 이끄는 음악공동체 ‘비빙(be-being)’이 연주하는 가락에 맞춰 서울에서는 정영두, 엉겡레뱅에서는 미에 코콩프 두 무용수가 춤을 추는 가운데 요리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불교의 영산재와 범패 등을 바탕으로 한 ‘비빙’의 음악 프로젝트 ‘이(理)와 사(事)’는 멀리 아시아의 영혼을 유럽 대륙에 풀어놓았다.

“육체의 음식과 영혼의 음식을 첨단기술을 이용해 ‘디지털 식사’로 즐기고 계신 여러분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계신가요. 전쟁 없는 세상? 아이들이 행복한 세계? 각자 자기 자리에서 제 매력을 발휘해서 기쁨을 공유하는 곳이 우리가 꿈꾸는 파라다이스 아닐까요. 자, 그 시작을 위해 건배하시죠.”

노소영 관장의 제의에 양국 참석자 200여 명은 서로 대형 화면을 향해 잔을 높이 들었다. 그때, 한국 쪽 스크린에서 함성이 터졌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그리스 골문에 장쾌한 첫 골을 성공시킨 찰나였다. 박수가 터지고 만세 물결이 시공을 허물었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심리, 그 마음 깊숙한 곳을 움직여야 멀리 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엉겡레뱅 디지털 아트센터의 제6회 축제는 내년 10월 ‘뱅뉘메리크-코레’란 이름으로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엉겡레뱅(프랑스)=글·사진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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