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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사찰 논의하자" 꼬리 내린 이라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무성한 가운데 이라크가 "무기사찰 재개 여부를 논의하겠다"며 3년 만에 유엔과 대화에 나서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이라크 꼬리 내리나=나지 사브리 알 하디티 이라크 외무장관은 7일(현지시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유엔의 대(對)이라크 무기사찰 재개 여부에 관해 논의한다. 이 자리는 이라크의 제안으로 마련됐다. 이라크는 또 유엔의 권유에 따라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 단장과 고위급 회담도 한다. 미국과 더불어 이라크 타도 전선의 선봉에 서 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는 "조사단을 구성, 직접 이라크를 방문해 사찰하라"는 제의까지 했다. 블릭스 단장은 "이라크가 사찰 거부 구실만 찾던 3년 전과 달리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사찰 협상이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라크는 1998년 말 미·영의 대규모 공습을 받자 유엔 사찰단을 추방한 뒤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사찰 요구를 거부해 왔다. 미국은 이라크가 이 기간 중 핵·생물·화학무기를 대량 생산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 이라크가 '돌연' 사찰을 수용할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공격 의지를 다지는 미국의 김을 빼고 나아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게 유엔의 분석이다. 미국의 공격에 미온적이었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점차 미국 편으로 기울고, 믿었던 러시아가 침묵하고 있는 사태도 영향을 준 것으로 지적된다.

◇아랑곳 않는 미국=미국은 6일 이라크가 유엔의 원조로 도입한 트럭을 미사일 발사기로 개조한 모습을 찍은 위성사진과 영상을 유엔의 대(對)이라크 제재위원회에서 공개했다. 미국이 첩보위성이 촬영한 극비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미국은 이라크 정권이 전복돼야 하는 이유를 유엔에 제시한 것"이라며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등 서구 언론은 6일 "앞으로 이라크는 사찰 재개 여부를 놓고 시간만 끌다 이달 말 아랍연맹회의에서 아랍권의 지지를 끌어낸 뒤 미국과 '협상'에 나서려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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