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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 오빠한테 뺏긴 것 같아요 ^^"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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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김)동성이 오빠 사건 때문에 기쁜 마음을 숨기느라 힘들었어요."(최민경)

"공항에서 선수단 해단식 때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금메달을 괜히 땄나 싶었어요."(주민진)

"금메달이 자꾸 보고싶어 잠도 안와요.생각보다 무겁네요."(박혜원)

"고생했다고 어머니가 제가 좋아하는 꽃게탕 많이 해주셨어요."(최은경)

지난 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는 새로 돋은 풀냄새가 진동했다.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계주 금메달리스트 최민경(20)·주민진(19)·박혜원(19)·최은경(18)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불행한(?)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될 이들은 "우리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요. 서운했던 일도 다 지난 일이죠. 이제 웃을 수 있어요"라며 지난 올림픽의 기억을 풀어놓았다.

그 속에는 막강 중국을 누르기 위해 쏟은 땀과 금메달을 따고도 뒷전으로 밀렸던 자신들의 신세 한탄도 담겨 있었다. 이제야 시원스럽게 웃는 네명의 얼굴에서 겨울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장면 1(선수촌 비밀파티)

감격의 금메달을 딴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오후 11시 올림픽 선수촌. 불꺼진 한국선수단 숙소 4층에 최민경과 최은경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살금살금 걸어 주민진·박혜원의 방을 찾았다. 침대에는 클릭B의 CD플레이어가 돌고 있었고, 한쪽 책상 위에는 그동안 선수식당에서 다람쥐처럼 모아놓은 쿠키가 쌓여 있었다. 네명만의 조촐한 자축파티의 시작이었다.

여자계주에서 올림픽 3연패를 이루는 대업을 이뤘지만 네명은 외톨이였다. 김동성 사건 때문에 선수단이며 기자들도 그들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여자팀 주장이자 맏언니인 최민경은 후배들을 따로 모았다.

이 자리에서 박선수는 "감독님이 몸무게 1㎏이라도 초과하면 출전시키지 않는다고 해 그동안 햄버거 한쪽도 못 먹었다. 밤마다 배고픔을 참느라 힘들었는데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올라갈 때 다 보상받았다"고 말해 방안을 폭소로 만들었다.

최은경도 "링크에 들어가기 전 우리 모두 손을 꼭 잡고 함께 들어갔는데 힘이 많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밤은 깊어갔고 결국 새벽 2시가 훌쩍 넘어서야 그들만의 파티를 끝냈다.

#장면 2(3월의 시작)

지난달 27일(한국시간) 귀국행 비행기에서도, 환영인파가 몰려온 인천공항에서도 그들은 뒷전이었다. 인터뷰 순간에도 "김동성 선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소녀티를 막 벗어낸 이들이지만 어렵게 따낸 금메달에 대한 대접에는 섭섭함이 많았다.

모두 세화여고 출신인 네명의 계주팀은 지난 2일 모교 행사에 참석, 간만에 주인공으로서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4일 올림픽공원내 올림픽파크텔에서는 포상금 수여식이 열렸다.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각각 단체전 금메달 포상금 1천만원을 받았다.

이제 3월. 동갑내기인 주선수와 박선수는 각각 이화여대와 성신여대로 진학했으나 입학식도 못 치르고 지난 3일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다. 네명의 금메달 계주팀은 이달 말과 다음달 초로 예정된 팀선수권대회(미국)와 세계선수권대회(캐나다)에서 다시 한번 시즌 마지막 승부를 건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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