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하룻밤 네 번이 적다니…

중앙일보

입력

예전 같으면 망측하다고 할 정도로 입 밖에 발설하기조차 어려운 불평이 지금은 만인들이 다 듣는 자리에서 여인의 육성으로 그대로 표출되는 솔직한 세상이 되었다.

곽대희의 性칼럼

다름 아닌 부부 간의 성교 횟수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재판을 관장하는 판사는 섹스의 횟수가 얼마나 돼야 정상이랄 수 있는지 알지 못하므로 비뇨기과 의사를 증인으로 부르는 수가 많다.

필자도 결혼 후 1년 동안 세 번밖에 섹스를 안 한 남편 때문에 법정에 불려나간 일이 있다. 또 다른 남자는 라스베이거스와 하와이, 플로리다, 뉴욕 등 미국의 명승지를 주유(周遊)하며 허니문을 즐기는 동안 단 한 차례의 섹스가 없었다는 것이 쟁점이 돼 곧장 이혼법정으로 직행하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또 어느 부잣집 딸은 신랑이 페니스를 질구에 정확하게 삽입하지 못한다고 그 방법을 신랑에게 교육시켜 달라고 주문했던 적이 있다. 이혼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판사는 1주일에 몇 번 부부관계를 맺는 것이 젊은 남편의 능력인가를 물었다.

무책임하게 증언할 수도 없어서 관계 문헌을 찾아봤더니 부부로서 최소한 가져야 할 성행위 기준에 대한 사항이 이미 르네상스 시대부터 대두되어 있었다.

1499년 5월 프랑스에서 아라곤이라는 작은 나라의 공주와 로마 법왕의 아들인 보르지아가(家)의 체자레 공작이 화촉을 밝혔다. 신부는 16세, 신랑은 24세로 유럽 풍습으로 모두 결혼 적령기였다.

본디 섹스 횟수를 중요시하는 프랑스인지라 이 두 사람이 초야에 부부관계를 제대로 하고 있으며, 했다면 하룻밤 몇 차례나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신방에 파견된 인사가 육안으로 확인하는 ‘초야 증인제도’가 있었는데 그 증인으로 국왕 루이 12세가 선정돼 이들 규방 침대 곁 의자에 앉아 그 부부의 메이크 러브 장면을 면밀하게 지켜보았다.

한 커플의 초야가 낱낱이 공개되는 이 사건을 두고 몽테뉴는 그의 저서 『수상록』에서 ‘아라곤의 공주는 정상적인 결혼에 필요한 절제와 신중함의 규범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결혼이 요구하는 한계횟수를 하루 6회로 정했다’고 기술해 놓았다.

고대 그리스의 법률가 솔론은 부부의 임무를 게을리 하지 않기 위해 한 달에 3회 성교로 충분하다는 평결을 내린 바 있다. 이런 법률적 해석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종교개혁의 기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1주에 2회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이고, 1년에 104회면 그 어느 여자나 만족하는 수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루터의 유권해석에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은 이 결정이 루터가 42세로 노쇠기에 접어든 때의 생각이고, 만약 그가 20대였더라면 그보다 많은 횟수가 표준치로 제시되었을 것이라고 항변한 것으로 기록되는 등 이론이 많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하던 섹스에 관한 유럽인들의 생각에 ‘1주일에 1회의 섹스는 시식(試食)에 지나지 않고, 2회는 신사로서 최소한의 예의며, 3회는 숙녀에 대한 의무, 4회는 아내 된 여성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 틀어박혀 있었다고 역사적 기록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남자들의 정신·육체적 부담이 가중되는 느낌인데, 브랜튼의 저서 『염부전(艶婦傳)』을 보면 여성들의 끝을 모르는 정욕이 하나의 공포영화처럼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궁녀가 궁중 침실에서 혼자 한탄하는 소리를 그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집주인은 풍류가 뛰어난 남아라고 칭송하고 있었는데, 하룻밤에 겨우 4회밖에 성행위를 못하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이런 고전적 해설보다 현대의학적 서베이를 통해 얻는 수치가 스탠더드가 되는데, 킨제이 보고에 의하면 20, 30대는 1주에 2~5회, 40대는 주 2회가 보통으로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평균치보다 낮다고 해서 성 불구, 남보다 다소 높다고 해서 수퍼맨 운운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환경과 경제형편이 개선되었을 때 가장 큰 가변성을 가진 것이 바로 섹스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곽대희 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931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