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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격화되는 콜롬비아 內戰 : 미국과 손잡고 게릴라 소탕전 전면전 비화… 민간 큰 피해 우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1965년 이후 38년째 내전 상태에 있는 남미 콜롬비아에서 또다시 전쟁의 불길이 치솟고 있다. 지난달 20일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대통령은 지난 3년간 진행해온 좌익게릴라 조직들과의 평화협상을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하고, 다음날부터 게릴라 근거지에 대한 대대적 공세에 나섰다.

파스트라나는 98년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적극적으로 평화협상을 벌여왔다. 이듬해 1월 직접 정글로 들어가 콜롬비아혁명군(FARC)지도자 마누엘 마룰란다와 담판을 벌여 남부 저지(低地)에 '긴장완화지대'를 설정, 사실상의 게릴라 조직 영토로 인정하는 획기적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엔 정부군과 게릴라 양측이 억류 중인 포로를 석방하는 등 우호적 분위기가 유지돼 왔다.

냉전 종식과 함께 외부 지원이 끊기면서 중남미 좌익게릴라 활동은 대부분 쇠퇴했다. 그러나 콜롬비아만은 예외여서 정부와 마약 카르텔 간 '마약전쟁'이 끝난 95년부터 좌익게릴라군은 정부군 기지 공격, 차량 폭파, 송유관 파괴, 요인 납치 등 각종 공세를 강화해 왔다. FARC와 국민해방군(ELN)으로 대표되는 이들 게릴라 조직은 마약 거래조직들에서 거둬들인 '세금'과 납치한 정치인·기업인들에게서 뜯어낸 몸값을 자금원으로 하고 있다. FARC의 연간 수입은 3억달러에 달한다.

파스트라나가 평화협상을 중단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지난달 20일 발생한 국내선 여객기 납치사건이다. FARC가 납치한 승객들 중에는 정치 명문가 출신인 호르헤 게첸 상원의원이 포함돼 있다. 이어 23일엔 오는 5월 실시될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여성 정치인 잉그리드 베탕쿠르를 납치함으로써 FARC는 국내외에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 3년간 파스트라나는 평화협상을 진행하는 한편 정부군의 군사력 증강을 추진해왔다. 마약조직 소탕을 목적으로 '플랜 콜롬비아'를 미국에 제시해 13억달러의 원조를 받았고, 이를 토대로 지난 4년간 정부군을 8만명에서 14만명으로 늘렸다. 블랙호크 30대 등 60대의 헬기로 무장한 5천명의 신속대응군은 특히 위력적이다. 파스트라나는 최근 '플랜 콜롬비아'의 목표를 마약조직 소탕뿐 아니라 송유관 보호로까지 확대하자고 미국에 제안했다. 미국 옥시덴틀 석유회사가 소유한 송유관은 지난해 1백70회의 게릴라 공격으로 2백66일 동안이나 가동이 중단되는 피해를 보았다. 부시 행정부는 송유관을 경비할 콜롬비아군 부대 창설과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9천8백만달러의 예산을 의회에 요청한 상태다.

파스트라나의 강경책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게릴라 조직 역시 지난 3년을 전력증강의 기회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콜롬비아 내전은 총력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당연한 결과로 민간인 피해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10년간 3만5천명이 사망하고, 2백만명이 국외로 탈출했다. 콜롬비아에선 오래된 농담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콜롬비아를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은 등(燈) 끄는 일을 잊지 마라."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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