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 독주'서 팀 플레이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펀드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주먹구구식 운용방식에 염증을 내고 떠난 투자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신뢰를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이다. 요즘 투신운용사들은 펀드매니저 개인의 역량보다는 팀 단위의 시스템으로 펀드를 굴린다. 한때 펀드 이름에 유명 펀드매니저의 이름을 딴 '○○○펀드'는 자취를 감췄다. 수익률 우선에서 투자위험 최소화 전략으로 돌아선 결과다.

◇약해진 펀드매니저의 파워=요즘 주요 투신운용사는 펀드매니저·애널리스트·투자전략가 등이 모여 공동으로 종목을 선정하고, 투자에 나선다. 팀으로 주식을 운용하면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투신의 펀드매니저들은 애널리스트들이 뽑아준 종목만 매매할 수 있다. 물론 펀드매니저가 특정 종목을 골라 애널리스트에게 분석을 의뢰하기도 한다. 분석 결과 투자부적격 종목으로 판정되면 펀드매니저는 이 종목을 살 수 없다.

미래에셋은 이런 매매방식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애널리스트들의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조사분석부를 분사해 '미래에셋 운용전략센터'를 지난해 10월 설립했다.

삼성투신운용은 매일 아침 7시에 펀드매니저·애널리스트·투자전략가 등 30명이 모여 그날 매매전략을 수립한다. 물론 매매대상 종목은 이들이 공동으로 고르고 있다. 삼성투신운용은 또 펀드매니저가 약관을 위반했을 경우 즉각적으로 경고를 보내는 리스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은 "펀드운용본부장은 물론 회장이 어떤 종목을 찍어 사라고 해도 펀드매니저가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조용한 영업=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투신사 직원들은 가두 판촉캠페인에 나서야 했다. 또 지점별로 펀드 판매목표치를 정하고, 개인마다 판매규모가 할당됐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게 됐다. 1999년 하반기와 2000년 주가 폭락기에 강제 할당식 판매의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한국투신 박동열 영업추진팀장은 "판매실적 위주의 경쟁을 하다보니 각종 분쟁이 생기고 회사의 수익구조도 나빠졌다"며 "각종 전망자료를 고객에게 충분히 제공하고 고객 스스로 펀드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똑똑해진 투자자=템플턴투신의 전용배 이사는 "요즘은 펀드에 어떤 종목이 들어가 있는지를 문의하는 고객들이 많아졌다"며 "주가 움직임이 둔해진 종목을 갖고 있으면 투자자들이 직접 매도할 것을 재촉한다"고 전했다.

고객들의 요구가 까다로워지다보니 여기에 얼마나 잘 응하느냐에 따라 투신사 자금유입도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희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