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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여~ 목소리를 더 높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미국은 딱딱한 껍질 속에 몸을 숨긴 달팽이의 모습에서 벗어나 세계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보다 많은 재원을 지출하여야 한다. 만약 제국주의적인 미국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그 적절한 역할은 1945년에 독일 및 일본에서 그러하였던 것과 같이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이 결핍된 국가들에서 무력에 의해서라도 이러한 제도들을 구축하는 것이다."(4백58쪽)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에 한반도가 북새통을 치른 뒤끝, 적나라한 '제국주의 독전(督戰)'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은 당혹스러울 게다. 이라크·리비아·북한 등 소위 '불량국가'들에 대한 침공 불사는 물론 새질서 구축에 깊숙이 개입하라는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신간 『현금의 지배』는 이런 주장들로 지난해 초 현지에서 출간됐을 때 "도발적이며 선동적"(월스트리트 저널), "명쾌하게 논쟁을 제시하는 책"(퍼블리셔즈 위클리) 등의 평을 받았던 문제적 저작이다.

저자인 니알 퍼거슨(옥스퍼드대 역사학 교수)이 대서양을 건너 전하는 메시지는 미국 보수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하다. 특히 "앞으로 당분간은 미국을 직접 공격할 의도를 가진 나라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대도시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4백51쪽)고 예언(!)하며 미국을 향해 보다 당당하게 제국주의 경찰 역할을 수행하라고 주문한 저자의 목소리는 9·11 테러사건 이후 더 큰 반응을 얻고 있다.

때문에 우리에겐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주석과 참고문헌 목록만 1백쪽이 넘는 이 묵직한 저술은 분명 정색을 하고 읽어볼 필요가 있다. 슈퍼 파워 미국의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한 참고도서로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한 채 말이다.

이 과정에서 새뮤얼 헌팅턴이나 폴 케네디,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의 저작과 닮은 꼴이면서도 또 다른 측면도 짚어봐야 한다. 주로 역사에 대한 거시적인 접근을 통해 미래담론을 제시하는 그들과 달리 퍼거슨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보다 미시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즉, 저자는 우선 지난 3세기 동안 구미 국가의 성패가 '권력의 사각형'-징세제도·의회·국가채무·중앙은행이라는 제도들-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운영하였는가에 의존해왔다는 독창적인 가정에서 출발, 국제채권시장의 성장사를 흥미롭게 서술한다.

이를 통해 화폐와 채권시장, 과세 및 국력의 상호관계, 그리고 전쟁의 인과관계를 역사·정치·경제학의 실타래를 풀어 한 편의 자수 작품으로 완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뮤지컬·영화에서부터 톨스토이의 소설에 이르는 수많은 인용과 비유는 읽어내기 버거울 정도다. 그러나 기본 명제는 명료하다. 요약하자면 이렇다."돈, 즉 경제는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한 요인에 불과하다. 특히 경제제도의 혁신을 가져온 것은 정치적 사건, 무엇보다 전쟁이었다."

당연히 마르크시즘류의 경제 결정론을 뒤집어 버린다. 그리고 경제와 정치 사이의 '연결'이 현대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중 하나로부터 다른 것으로, 특히 자본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는 그런 인식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서구의 낙관주의 환상을 낳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결코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며, 오히려 민주주의의 비무장화 경향은 파괴적 역량에서는 우월한 독재체제의 도전을 부르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어판 제목은 독자에게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원제 'The Cash Nexus'는 토머스 칼라일의 저서 『차티스트 운동』에서 인용한 것이다.

저자는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외형상 영미 자본주의 모델의 승리가 뚜렷하게 나타난 현 시점에서 칼라일이 사용한 표현이었던 정치학과 경제학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 즉 연결에 관해 재검토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역사를 경제 등 하나의 요소로 분석하려는 모든 결정론적 시도를 부정하면서 '역사는 언제나 활동하는 존재의 혼란'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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