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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히트곡 메이커’ <4> 록 그룹 ‘부활’ 김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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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록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김태원은 “음악은 멋있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 “자기 멋에 취한 음악보다 많은 대중이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강정현 기자]

소년에겐 기타만이 유일한 삶의 끈이었다. 전과목 ‘빵점’을 수시로(때론 고의로) 받는 꼴통이었지만, 기타만 잡으면 친구들이 소년을 우러러 봤다. 소년의 스승은 LP 레코드였다. 레드 제플린(지미 페이지)과 이글스(조 월시) 등의 음악을 들으며 기타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음악 이론을 들춰본 적은 없다. 하지만 한번 들은 음악은 기타로 똑같이 쳐냈다. 입버릇처럼, 소년은 말했다.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될 거야.”

훗날 이 소년은 우리 대중음악계를 이끄는 록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성장한다.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45)이다. 1985년 데뷔 이후 ‘회상3(마지막 콘서트)’ ‘사랑할수록’ ‘네버 엔딩 스토리’ 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한국 록 음악을 살찌웠다. 최근에도 12집 앨범의 타이틀곡 ‘사랑이란 건’을 각종 음원 차트 톱 10에 올리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두루 입증하고 있다. 3월부터 5월까지 아홉 차례 펼쳐졌던 부활의 단독 콘서트도 매진 사례를 이어갔다.

“음악적으로 높은 난이도만 추구하다간 망칠 때가 많아요. 대중과 끝없이 소통하는 게 작곡가의 숙명이죠.”

작곡은 고교 2학년 때 처음 시작했다. 당시 소년 태원은 아리따운 여학생과 깊은 사랑에 빠졌었다. 소녀의 집에서 그를 매몰차게 반대했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이별을 겪게 된다. 비가 퍼붓던 어느 날 밤, 소녀가 고모의 손에 이끌려 떠나갔다. 붙잡을 용기가 없었던 소년은 가만히 이런 멜로디를 읊조렸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부활’ 1집에 수록된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이렇게 작곡됐다. 김태원은 고통을 통해 작곡을 익힌 뮤지션이다. 생애 첫 자작곡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마음 아픈 개인사가 밀어낸 노래였고, 이후에도 감당하기 힘든 히스테리 속에서 튀어나온 노래가 많았다.

“곡 쓴답시고 멤버들이나 가족을 괴롭히는 일이 많았어요. 일부러 고통을 찾아 들어가서 곡을 뽑아내는 식이었죠.”

그럴 만도 했다. 그가 부활을 결성했던 80년대 중반은 한국 록이 막 부흥기로 접어들던 때였다. 무수한 팀이 난립했고, 살아남을 방도를 찾는 건 늘 리더인 그의 몫이었다. 대마초와 구속, 정신병동…. 초대 보컬 이승철이 탈퇴하면서 부활은 흔들렸고, 그는 한없이 추락했다. 정신병동에 입원을 상담하던 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병실에서도 기타는 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는 애타게 기타를 찾는 그를 집으로 다시 데려왔다. 그날 밤, 그는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들췄다. 자식을 잘못 키운 아비의 자책감이 가득 했다. 그는 “대마초의 유혹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며 밤새 눈물을 쏟았다.

부활 3집 ‘사랑할수록’(1993)은 그런 그가 재기에 성공한 음반이다. 1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부활은 죽었다”던 비아냥도 쑥 들어갔다. 하지만 시장에서 밴드 음악의 한계는 또렷했다. 4집 이후 이렇다 할 히트곡을 내지 못했다. 곡은 유려해도 소비가 안 됐다. 2002년 원년 멤버 이승철과 함께 발표한 8집은 분명한 전환점이 됐다. 당시 곡 작업으로 날카로웠던 그는 아내와 자주 다퉜다. 결국 아내가 불현듯 캐나다로 떠났고, 그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이런 곡을 썼다.

“그리워 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이승철의 대중성과 김태원의 작곡 노하우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8집 타이틀곡 ‘네버 엔딩 스토리’는 40만 여장 팔리며 부활의 재도약을 알렸다. 2003년 KBS 가요대상에서 작사·작곡상도 거머쥐었다.

김태원은 최근엔 KBS-2TV ‘남자의 자격’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한다. 처음엔 록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의 예능 출연은 부활의 팬층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부활을 전혀 몰랐던 젊은 팬들도 많이 늘었습니다. 리더로선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는 요새 다시금 소년 시절을 떠올린다. 소년 태원의 꿈은 기타 치며 노래하는 가수였다. “예순이 넘으면 에릭 클랩튼처럼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마흔다섯, 이 농익은 작곡가에겐 맨 처음 기타를 잡던 날의 열정이 여전히 꿈틀대고 있었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김태원의 작곡 노트

김태원은 아날로그형 작곡가다. 컴퓨터 작곡이 일반화됐지만, 마우스를 클릭해 곡을 쓰지 않는다. 대신 그는 카세트 녹음기를 끼고 산다. 자동차와 거실·화장실·가방 등에 늘 녹음기를 비치한다. 멜로디가 떠오를 때마다 즉시 녹음해뒀다가 기타를 치며 곡을 완성한다. 그는 “대부분의 곡이 경험의 산물”이라고 했다. 훗날 이승철의 히트곡이 된 부활 1집의 ‘회상3(마지막 콘서트)’은 그의 아내가 대마초에 취한 그를 보고 싶지 않다며 공연장을 뛰쳐나간 것을 떠올리며 쓴 곡이라고 한다. 그는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기보다 상상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가사 속 주인공이 됐다는 상상을 하며 그 인물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뽑아낸다.

빠른 로큰롤 템포의 5집 수록곡 ‘론니 나이트’는 원래는 발라드곡이었다. 밤낚시를 하던 중 적막한 느낌을 곧바로 곡으로 옮겼는데, 녹음 과정에서 빠른 리듬으로 편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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