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채권 5조원 끼워팔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엽총을 사서 사냥을 하려면 엽총 소지 허가와 수렵면허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국민주택채권도 사야 한다.

매입해야 할 채권은 엽총 소지 허가에 3만원, 수렵 면허에는 5만~50만원이다. 그만큼의 지역개발공채나 도시철도채권을 더 사야 하는 지역도 있다.

지난해 4월 구조조정 차원에서 두 회사로 쪼갠 A사는 부동산 등기를 할 때 등록세 등의 세금은 다 면제받았다. 정부의 구조조정 원활화 정책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주택채권은 면제받지 못했다. A사가 법인 설립과 부동산 이전 등기를 하느라 매입한 국민주택채권의 규모는 2백50억원이나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www.fki.or.kr) 홍성일 과장은 "법인 설립이나 사냥이 주택건설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인허가를 받거나 각종 등록·등기시 반드시 매입해야 하는 국민주택채권 등 강제성 채권이 오·남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경련은 20일 '강제성 채권제도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국민주택채권과 도시철도채권·지역개발공채 등 국민이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는 강제성 채권제도가 폐지되거나 축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2000년 한해 동안 세 종류의 강제성 채권 발행액은 5조3천8백14억원으로, 같은해 소득세와 법인세 합계액의 15.2%에 해당한다.

전경련측은 또 "강제성 채권 발행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낮아 그 차액만큼 국민이 손실을 본 것"이라면서 국민 손실액이 2000년 중 8천5백33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洪과장은 "이는 정부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국민에게 손실을 입힌 불공정 거래"라고 주장했다.

관광 숙박업의 경우 건축 허가시 국민주택채권, 영업 등록시 도시철도채권을 사야 하는 등 이중 부담을 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전경련측은 강제성 채권제도 폐지가 어렵다면 ▶영업행위 단계별 부담이나 두세가지 채권 중복 매입을 없애고▶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주택이나 도시철도 건설과 무관한 경우에는 매입 의무를 면제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욱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