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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서울시장 인터뷰> "지금 같은 지역대결선 大選 끼어들지 않을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서울시장에 다시 출마하지 않겠노라고 지금까지 37차례나 공언했어요.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20일 오전 월드컵 준비상황을 한참 설명하던 고건(高建)서울시장은 질문이 차기 선거에 미치자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루 전 그는 서울시 의회에서 또 한번 불출마 입장을 밝혔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지않는 데 대한 반응이다.

-정말 안나옵니까.

"3~4년 전 국정감사 때부터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불출마는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이제는 과거완료형이 됐습니다."

-일부 시 의원과 구청장들이 추대에 나서고 민주당에서도 상당히 챙기는 분위기인데….

"과분하게 평가해주는 분들의 뜻을 받들지 못해 송구합니다 .그러나 나는 말을 뒤집는 사람이 아닙니다."

-절대적입니까.

"그렇습니다.얼마 전 민주당 의원을 만났을 때 '결코'라는 표현까지 썼어요(관료 출신의 高시장은 '결코'나 '절대'같은 단어는 함부로 쓰지 않는다)."

-인기가 좋은데 왜 그만두려는 거죠.

"국무총리를 하고도 서울시장에 나온 것은 10년 전 관선시장 때 시작한 2기 지하철을 내 손으로 끝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복마전이란 서울시청의 오명을 씻어야겠다는 각오도 있었고요. 제 나름의 역할은 이 두가지를 마무리하면서 다했어요. 이제 서울시도 새로운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번 불출마가 대권을 염두에 둔 포석은 아닙니까.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지역감정과 지역대결에 기초한 대권 경쟁에는 끼어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번 대선도 이미 지역대결로 흘러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뭘 하실 작정입니까.

"특별한 계획은 아직 없어요.명지대 석좌교수 직위는 그대로 갖고 있으니 무직자는 면하겠죠. 개인적으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얘기입니까.

"정치 일선에 나서지도 않았으니 후퇴할 것도 없어요.서울시장은 정치하는 게 아니라 시민에게 봉사하는 자리입니다."

-민주당적은 어떡합니까.

"민주당적은 계속 보유할 생각입니다.그렇지만 당쪽에서 다른 요구를 하더라도 현재로선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요."

-차기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원을 요구하는 후보들이 많을텐데요.

"현직 시장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법률에 걸립니다.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후보들을 격려하는데 머물 생각입니다."

-역대 최고의 서울시장을 꼽는다면.

"(접견실 벽에 걸린 역대 서울시장 사진들을 돌아보며) 외형적 성장시대 때는 불도저 같은 시장이 필요했고….지금은 양보다 질이 중요한 시대이니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합니다. 솔직히 1988년 관선시장이 된 이후 중간에 조순(趙淳) 전 시장을 제외하고는 워낙 단명한 분들이 많아 어떤 때는 제가 13년 동안 계속 서울시장을 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차기 시장의 바람직한 조건은.

"우선 1천만 시민들의 생활행정을 책임질 수 있는 관리자이면서 경영자가 필요합니다. 둘째는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조정자 역할이구요. 마지막으로 10년 후, 20년 후 서울을 설계할 수 있는 그랜드 디자이너가 필요합니다."

-월드컵 준비는 잘 돼갑니까.

"세계 최고의 스타디움과 최고의 분수가 모습을 드러냈고 상암동 쓰레기 매립장 1백만평이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어요. 공중화장실·간판·도로표지판은 반드시 국제수준으로 올리겠다는 목표도 어느 정도 달성했어요.하드웨어 준비는 마무리된 셈입니다."

-아직 월드컵 붐이 시들한 편인데요.

"국민의 관심이 온통 16강에 오를지에만 쏠려 있다는 느낌입니다. 월드컵이 올림픽보다 경제적 효과가 더 큰 데도 말입니다."

-고질적인 교통체증이 문제인데요.

"월드컵 때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 중심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가양대교와 난지도길이 완공됐고 월드컵 경기장 밑까지 바로 지하철로 연결돼 무리가 없어요. 지난번에도 지하철을 이용해 모든 관람객이 40분만에 질서있게 퇴장했어요."

이철호·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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