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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교육 공화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 교육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혼란스럽고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서울 강남으로 전학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었다는 보도가 나온 데 이어, 그 중에서도 '학원 8학군'이라는 대치동은 집값이 껑충 뛰면서 전국에서 가장 비싼 동네가 됐다. 어디 그뿐인가. 수도권 신도시 지역에서는 고교평준화 첫해에 학교 배정 착오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과외병을 치유한다고 평준화를 시행한 지 어느새 28년. 강산이 세번 변할 시간이 흐르도록 목표 달성은커녕 제도 시행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다니는 '내 자식' 교육열로 일그러진 2002년 '교육공화국'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올해 대학입시에서 나타난 이공계 기피현상이다. 서울대 공대의 경쟁률이 낮았던 가운데 그나마 합격자들이 다른 대학의 의대를 택해 무더기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사상 최저의 등록률을 기록했다.

우수한 자연계 학생들이 의대나 한의대 등으로 몰리는 것 자체를 우려할 것은 아니다. 취업난의 쇼크가 크고,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사회적 대우도 그전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약화됐으니 자유시장 원리상 당연한 결과다. 또 이공계 학과가 당장 공동화(空洞化)되는 것도 아니니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문제는 교육당국이 이같은 조짐에 미리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공계 고급인력의 안정적인 양성은 우리 입장에서는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천연자원이나 돈이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경쟁력을 갖춘 산업기술인력 양성에 주력했던 때문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6T니 BK21이니 하며 미래형 산업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산업기술 인력은 제철소의 용광로나 마찬가지다. 잠시라도 용광로의 불이 꺼지면 재가동에 시간이 걸리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올 수도 있다. 물이 엎질러진 뒤에 범정부 대책을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챙겼어야 할 일이다. 그것이 교육정책 아닌가.

이번 기회에 인적관리를 위한 교육정책을 바로잡지 않으면 정말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공계 인력의 질적관리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1 비전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폐지를 요구한 고교평준화 제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대학교수들은 평준화교육으로 대학교육에 영향이 있을 정도로 신입생들의 실력이 저하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대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수학·물리·화학·생물 등 이공계 필수과목에 대해 심화반·정규반 외에 기초반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전반적인 실력이 본고사 시절의 7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고교 교육을 방치해서는 우리 기술의 질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런 문제를 모르지 않을 텐데 교육부는 유독 평준화 개선에 있어서는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평준화를 해제하면 중3병이 도지고 학부모들도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목표가 무한경쟁시대를 헤쳐나갈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라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평준화의 완전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평준화 28년에 공교육 현장은 '잠자거나 잡담하는 교실'로 바뀌고, 평준화조치에 실망한 학부모들이 강남으로 몰리는 실정을 왜 모르는가. 언제까지 '다수의' 학부모들과 집단 플라시보 현상에 빠져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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