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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리더들 희망은 불황보다 강하다] 12. 인터파크 이기형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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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다윗이 골리앗과 격투를 벌였을 때는 단 한 명의 골리앗만 상대하면 됐다. 만약 여러 명의 골리앗이 다윗을 공격했다면? 결과는 모를 일이다. 인터파크 이기형(41)대표. 그는 자신이 처음 개척한 길(인터넷 쇼핑몰)에서 대기업 여럿을 상대해야 했다.

"처음에는 혼자 했으니까 1위였죠.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바람에 한때 정상을 내줬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다시 탈환했습니다." 지나친 경쟁으로 체력이 엄청나게 소진됐지만, 그만큼 몸이 다져져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과당경쟁 상태에서는 신속하고 공격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기형은 1991년 데이콤에 입사, 주로 멀티미디어와 인터넷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천리안 관련 기획을 많이 했다. "이 업무가 저에겐 큰 행운이었습니다.'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구나'하는 점을 먼저 알아차린 것이지요."

사업 구상도 이때부터였다. 어떤 인터넷 서비스를 할 것인가. 검색.메일 등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으나 그는 상거래에 초점을 맞췄다. PC통신에서 쇼핑을 하게 되면 폭발적인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급기야 95년 초 데이콤의 사내 벤처 아이디어로 인터넷 쇼핑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그해 말 회사 승인이 떨어지고 이듬해 6월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가 탄생했다.

막상 출범은 했으나 초반부터 크게 애를 먹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홈페이지에 상품 광고를 올려놓고 팔아보시라. 광고가 많이 될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 상점을 만들어 놓고 상품들을 진열하라는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의 질문은 이랬다. "인터넷 상점이 뭐 하는 건데?""위험성은 없나?" 심지어 인터넷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이어 닥친 외환위기로 분사를 추진했다. 시골집을 담보로 잡히고 창업투자회사도 여러 곳 찾아다녔다. 무려 50군데에서 퇴짜를 맞았지만 대한투자신탁에서 거금을 투자받아 데이콤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었다.

99년부터는 운이 슬슬 풀리는 듯했다. 코스닥에 등록하면서 자금줄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하지만 경쟁업체들이 하나둘씩 출현하면서 인터넷 쇼핑몰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든든한 모기업을 가진 기업들은 손쉽게 인터파크의 자리를 빼앗았다. 인터파크는 1위에서 2위로, 다시 3위로까지 추락했다. 이때 그가 세운 전략이 신속성과 공격성. 예컨대 책 무료 배송이나, 누구나 물건을 인터넷에 올려서 팔 수 있도록 하는 오픈마켓 등을 업계 최초로 시도했다. 이는 시장 상황, 고객의 마음, 비용 등을 정확히 분석하지 못하면 감히 내놓을 수 없는 경영전략이었다.

"다른 경쟁 유통업체와는 달리 우리는 인터넷의 특성과 인터넷 고객의 특성을 확실히 꿰고 있습니다. 회사의 경영전략도 여기에 초점을 맞췄고요. 그러다 보니 공격적이고 발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치열한 경쟁이 붙었을 때는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을 내려라. 그러나 꿈을 꾸되 발은 땅을 디뎌라"고 주문한다. 그 자신이 엄청난 경쟁 속에서 신속.공격적 전략으로 업계 정상 자리를 탈환했지만, 그 바탕에는 인터넷에 관한 튼튼한 실력을 갖춰놓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글=정선구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 이기형은=1963년 전북 익산 출생. 경기고와 서울대 물리학과 계열을 졸업했다. 당시 물리학과는 의대보다 입학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한다. 현 한국전자상거래 및 통신판매협회 이사. 그는 사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허황된 꿈을 꾸는 것보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부문을 잘 다져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인터파크의 지난해 매출액은 4136억원. 올해는 7300억원으로 예상되고 내년엔 1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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