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세기의 대결] 스티브 잡스의 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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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7일 새벽 5시30분(현지시간), 태평양 해안 수평선에서 시작된 일출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어둠을 서서히 걷어냈다. 뿌연 아침 안개 사이로 커다란 커피잔을 손에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습을 드러냈다.

애플 주최 세계개발자회의(WWDC 2010)가 열리는 모스콘 센터 앞, 오전 10시에 시작할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사진)의 기조연설을 좀 더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노숙을 택한 ‘잡스교’의 열혈 교도들이었다.

그중엔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 ‘서울버스’로 화제를 모은 고교생 개발자 유주완(경기고 3년)군도 끼어 있었다. 그는 “함께 온 한국 개발자들과 전날 밤 10시 30분부터 줄을 섰다. 잡스의 연설이 기대된다”며 즐거워했다. 오전 9시가 지나면서 행렬은 300m를 넘어섰다.

비슷한 시각, 바다 건너 서울. 우리들병원 생명과학기술연구소의 정지훈 소장은 새벽 2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침을 사뭇 말짱한 눈으로 바라봤다. PC 앞에 앉아 곧 시작될 잡스의 WWDC 기조연설을 기다렸다. 드디어 행사 시작. 트위터에 접속하자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과 유럽·아시아·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얼리어답터’들이 실시간 정보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잡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영어로, 중국어로 혹은 일본어와 러시아어로 생중계했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 분야의 대표적 파워블로거인 정 소장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새 소식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평가를 트위터에 속속 업데이트했다. 부산에서, 강릉에서, 미국 보스턴에서 팔로어(트위터 친구)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정 소장 못지않은 날카로운 분석을 잇따라 날리는 이들 중엔 미국 서부 샌타바버라의 오라클 본사에 근무하는 조성문씨도 있었다. 조씨는 이 회사의 자바 개발팀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이자 유명 IT 블로거다. 그는 “성별과 국적을 떠나 IT 종사자들에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놓칠 수 없는 이벤트다. 이번 시연회에선 그간 디자인·서비스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온 애플이 기술적 측면에서도 세계 최정상 기업으로 도약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가 두 번째 행사 참가라는 다음의 김동현 팀장은 “WWDC는 단순한 콘퍼런스가 아니라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다시 WWDC 현장. 연설이 끝난 뒤 한 시간가량이 지났는데도 행사장은 여전히 잡스와 아이폰4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참가자들로 북적댔다. 핀란드 소프트웨어 기업 델타 비 키의 사물리 리호넨은 미국에 처음 와 봤다며 “아이폰4를 보고 흥분했다”고 말했다.

동·서양인이 뒤섞인 한 무리의 젊은이들에게 다가가 연설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자신을 미국 웹 솔루션 벤처업체의 개발팀장이라 소개한 브렌든 림은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초면이지만 애플이란 공통 관심사만으로 금세 대화를 텄다”고 했다.

괴팍한 완벽주의자에서 창조적 경영인으로, 이제 ‘미래 라이프스타일의 설계자’로 평가 받는 스티브 잡스. 내일은 알 수 없으되 오늘만큼은 분명 ‘세상의 왕(King of the world)’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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