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의 일방주의는 자멸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윈스턴 처칠은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자주 인용되는 인물이다. 전쟁으로 부상 당한 영국은 그의 강인한 결단력과 도덕적 확신, 자유에 대한 믿음에서 위안을 얻었다. 만일 그가 대(對)테러전쟁이 7개월째 접어든 오늘날을 조망한다면 뭐라고 말할까. 아마 그는 "동맹국들과 공조하는 과정에서 동맹국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도 있다"는 평소 주장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이라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은 국제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할 권리가 있는가. 또 미국은 모두의 안전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면 악을 격퇴해야 할 의무가 있는가.나는 이러한 일방주의가 궁극적으로 비효과적일 뿐 아니라 자멸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군사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침에 따라 몇가지 위험천만한 본능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이는 군사력의 과시만이 진정한 안보의 기초가 되며, 미국은 스스로 설 수 있고, 미국의 동맹국들은 '엑스트라'로서 필요하지만 이들이 없더라도 일이 될 만큼 미국은 크고 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능엔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9·11 테러가 가르쳐준 교훈은 미국의 리더십과 광범위한 국제적인 협력 두가지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엔 다섯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현대기술이 국경과 관할지대를 무너뜨리듯 현재 세계는 상호 연관성 속에 놓여있다. 둘째로 자유무역과 자본주의, 기술이 융합한 세계화엔 어두운 면도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유럽국가들은 유럽연합(EU)을 만들어 공통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셋째로 유엔·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WTO)등 국제기구들은 세계화를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협박을 당하고 있다. 넷째로 유럽은 미국의 국방비 규모를 따라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안보는 광의의 개념이다.EU는 전체 국제사회 원조액의 55%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무상원조액의 3분의 2를 맡고 있다. 허약하거나 파산한 국가들이 오사마 빈 라덴의 수중에 빠지지 않도록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전세계는 미국에 대해 애정을 느끼고 찬탄하면서 동시에 두려움과 분노도 느낀다는 것이다. 세계엔 악(惡)이라 할 만한 것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특정국가에 대해 '악의 축'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이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가 구사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라크에 대해서는 사찰을 강화하고, 사담 후세인에 대적할 반대파를 지원해야 하지만 이란에 대해서는 셔터를 내리기 보다 개혁을 지원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우 김대중(金大中)정부의 햇볕정책은 지난 수년간 북한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었다.

최근 발간된 헨리 키신저의 저서엔 "미국은 남을 강요해서가 아니라 전세계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면서 도덕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구절이 있다. 이 말에 동의하며 이를 인용하는 것이 미국의 친구가 할 수 있는 솔직한 조언이 아닐까.

정리=강홍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