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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음식 남한에 알리는 게 문화통일 첫 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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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통일은 밥상에서부터’.

이애란 북한 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에게 밥은 생명·생계·교육·자아실현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 밥으로 통일을 말한다. [변선구 기자]

이애란(46)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이 연구원에 내건 모토다. 수강생들에게 북한음식을 가르치는 이 원장은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남북 주민을 하나로 묶을 가장 튼튼한 동아줄이 바로 공통의 음식”이라고 믿는다.

“싸우고 화해한다고 같이 밥 먹고, 뭔가 관계 맺을 일 있으면 또 모여 앉아 밥을 먹잖아요. 공통의 음식을 매개로 서로 마음을 알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게다가 탈북자들이 북한 요리를 남한에 널리 알리고, 남한 사람들이 북한 음식을 알아가는 것은 문화통일의 첫걸음일 수 있겠죠.”

그는 성공한 탈북자다. 지난해 이화여대에서 식품영양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탈북자 여성박사 1호다. 대학교수로 경인대 식품영양조리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3월엔 미국 국무부가 수여하는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받았다. 그런 그도 요즘 주눅이 들어있다. “천안함 사건이 나니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더군요. 북한 때문에 이 나라 아들들이 죽었으니까요. 한국의 평화가 곧 세계의 평화이니 지금처럼 국제 공조로 잘 대처했으면 좋겠어요. 제 남동생은 회사 동료가 ‘탈북자들 중 이중간첩이 많다는데, 계속 탈북자를 받아야될까’라고 해서 많이 위축됐대요.”

이 원장은 이런 분위기를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탈북자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둬 남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북한음식을 배워 취업·창업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는다. 서울 낙원동에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차려 북한 음식을 가르치는 가장 큰 이유다.

“탈북자들이 나름 경쟁력을 보여줘야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사회와 문화에 기여하는 당당한 국민으로 받아들여지는 길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 통일문제도 서로 수월하게 얘기할 수 있지 않겠어요? ”

그는 1997년 4개월 된 아들을 들쳐업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베트남을 거쳐 입국했다. 북에선 신의주경공업대 식품공학과를 나와 식품품질감독원으로 10여 년 일했다. 남에서는 부모와 동생 등 함께 탈북한 9명의 식구를 건사하기 위해 호텔 청소부, 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지인 하나 없는 처지에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해 2년 만에 최상위 실적을 냈다. 그 뒤 이화여대 특강에 나섰다가 인생이 바뀌었다. 장학생으로 대학원에 들어가 박사학위를 딴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 2만 명 시대인 지금에도 이 원장 같은 성공담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 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소득이 150만원이 안 되는 탈북자가 75.3%나 된다. 보험사기에 노출된 사람도 많다. <본지 3월 18일자 탐사기획> 

이 원장은 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조사를 해보니 탈북여성들을 대부분 다른 탈북자들에게 취업 정보를 알아본다더군요. 그들이 무슨 정보가 있겠어요. 그러니 쉽게 사기에 휩쓸리는 것이죠. 북한에서는 여맹·직맹·당 등 각종 조직에 귀속돼 인간관계가 강제적입니다. 그러니 탈북자들은 스스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데 익숙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특히 직업 교육을 강조한다. “탈북자 지원의 핵심은 자립할 수 있데 돕는 겁니다. 스스로 서려면 무엇보다 취업교육이 중요합니다. 북한 음식 가르치기도 그 일부입니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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