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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美 독립애니 감독 빌 플림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보고 나면 그 감독이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말 그대로 생김새가) '개인적으로' 몹시 궁금해지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 빌 플림튼(56)의 작품들이 딱 그런 경우다.
가령 이상한 광선에 쏘인 뒤 상상하는 것이 모두 실제로 이뤄지는 괴상한 혹을 갖게 된 남자의 이야기인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1999년)를 보자. 섹스 도중 아내의 가슴이 끝도 없이 거대하게 부풀어오르고 요술 방망이 같은 그 혹을 가로채기 위해 방송 재벌과 군부 세력이 개입한다.
지난해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뮤턴트 에일리언(22일 개봉)'은 어떤가. 정부의 음모 때문에 우주 미아가 된 조종사가 역시 우주를 떠돌던 동물들과 교접한 후 이상한 형태의 외계인들을 잔뜩 낳아 이들을 복수의 화신으로 키운 뒤 지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인간 아빠'를 위해 감행하는 복수는 잔인하고 유쾌하며 기상천외하다.
이렇듯 그는 섹스와 폭력을 절묘한 비율로 혼합하고 이를 과장된 유머로 포장하는 솜씨가 빼어나다. 두 가지에 대한 예술적 표현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고 얕은 우리로서는 '엽기적'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 온갖 익살을 떠는 코미디언이 기실 사생활에서는 엄한 아버지일 때가 많은 것처럼 그도 "로맨틱 코미디나 스크루볼 코미디(희극적 재치가 있는 대사 위주로 이루어진 코미디)를 좋아하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섹스와 폭력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둘 다 풍부하고도 긴 역사를 갖고 있지 않은가. 난 다만 머리 속에 있는 섹스와 얽힌 영감을 눈에 보이게끔 표현하는 것이며, 그걸 다른 사람들보다 종이에 좀더 잘 그릴 수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의 요리마다 고명으로 얹히는 것은 '풍자'다. 비판의식 없는 '엽기'의 행진은 공허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죽음을 앞둔 조종사가 장엄한 음악이 울려퍼지고 성조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고별 연설을 하는 '뮤턴트 에일리언'의 장면은 결국 "우주성을 위해 기부금을 내라"는 '속 보이는'광고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성을 위해 이용되는 것은 비단 애국심만은 아닐 터이니. "난 코미디에 항상 풍자를 집어넣는다. 고상한 제도에 유머를 찔러 넣는 걸 좋아하니까. 아마도 내가 시사 만화가로 출발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대학 졸업 후 뉴욕 타임스·보그·롤링스톤 등의 신문·잡지에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던 그는 펜트하우스·플레이 보이 등에 만화를 싣기도 했다. 75년 시작한 시사만화 '플림툰'은 그후 6년 동안 20여개의 신문에 게재될 정도로 명성을 누렸다. 그의 단편 애니메이션 '유어 페이스'(87년)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플림튼은 음악가로 따지면 '원맨 밴드'다. 연필로 스케치한 듯한 특유의 그림은 물론 배경·레이아웃·컬러링 등 모든 공정을 혼자 해왔다. 서면 인터뷰에서 그에게 한국의 단편 작가들을 위해 독립 감독으로서 자율성과 대중성을 조화시키는 비결을 물어봤다. "첫째, 5분 이내로 짧게 만들 것. 둘째, 비용을 많이 들이지 말 것. 셋째, 웃기게 만들 것. 재미있는 영화는 언제나 장사가 되니까!"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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