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訪韓 선물' 정부 말 믿어도 될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국 지도부의 북한 때리기가 계속되면서 정부의 움직임이 급박해졌다. 서울과 워싱턴의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미국의 진의(眞意)파악과 대북(對北)정책 조율에 나섰다.6일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인식과 정책을 우리쪽으로 끌어당길 현실적 '끈'이 없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은 북한을 테러전이라는 새 세계 전략에서 접근하고 있어 대북정책의 조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당장 급한 것이 오는 20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이다. 미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대북정책을 정리하려 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조기에 양국의 입장 차이를 봉합하지 못하면 한반도 정세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특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북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일단 임성준(任晟準)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5일 "부시 대통령이 진전된 대화 의지를 표명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지난해 6월 새 대북정책 발표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장밋빛 전망에 대해 외교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의 잇따른 강경발언에 비춰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진전된' 입장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승수(韓昇洙)전 외교부장관은 지난1일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9·11 테러 이후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증가했다는 우려를 전했다고 밝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수사(修辭)'가 아님을 뒷받침했다.
이런 구체적 근거를 갖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 발언이 누그러질지는 의문이다. 설사 한국측 입장을 고려해 정상회담을 피해가도 주한미군 부대에서는 발언이 거칠어질 수 있다. 방한에 앞선 일본 방문 때 괴선박 사건과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의혹 문제에 대해 어떤 표현을 쓸지도 변수다. 더구나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를 거론한 만큼 생화학무기까지 의제로 추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북·미간에 다룰 현안이라며 피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WMD 개발국가를 테러국가로 간주하겠다고 천명한 만큼 우리 정부도 테러전 협조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제네바 핵합의에 따른 핵사찰 문제는 발등에 불이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 시한(2003년)도 다가오고 있다.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1999년 북한의 미사일 수출선을 요격하자고 제안한 일도 있어 사태는 심각하게 발전할 소지도 있다.
오영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