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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D-54] 아프리카, 그리고 축구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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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남아공 월드컵은 ‘새로운 대륙’을 향해 나아가는 아프리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종갈등·빈부격차·범죄와 에이즈 등 산적한 문제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남아공에 유학해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장용규(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박사는 “아프리카는 위험하고 더럽고 미개하다는 선입견을 벗으면 아프리카가 제대로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아공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역사와 정치·경제 상황을 소개하며 “월드컵을 통해 아프리카와의 심리적 거리가 좁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아공 월드컵의 의미는.

“올림픽보다 더 큰 행사다. 아프리카를 알리고 선입견을 벗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걸 알리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남아공은 충분히 월드컵을 열 만하다. 각종 인프라가 잘 돼 있다. 내가 유학한 더반의 나탈대학만 해도 잔디 축구장이 8개나 있다.”

-월드컵이 남아공의 흑백갈등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까.

“매우 조심스럽다. 정부에서는 그걸 바란다. 하지만 인종갈등 치유는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흑백 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제도적으로는 50년, 역사적으로는 영국 식민지배 이후 200년을 끌어왔다. 그게 끝난 게 1990년이다. 20년 세월로도 지우기 어려운 걸 이벤트성 행사로 치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월드컵이 오히려 갈등을 적당히 봉합하고 모순을 구조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런 걱정도 일리가 있다. 우리도 88년 서울올림픽 때 거리 청소하고, 외국인들 눈에 안 좋게 보이는 보신탕집·노숙인들을 뒤편으로 밀어냈다. 남아공도 이미 정리가 끝났다. 이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흑인 빈민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안에서는 더 곪아갈 수도 있다.”

-월드컵의 경제효과는 얼마나 될까.

“상징적인 효과 이상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빈부격차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가장 큰 문제가 빈민층이다. 범죄도 대부분 여기서 나온다. 만델라-음베키 대통령 때 흑인 중산층을 만들어 백인과 격차를 줄이려는 계획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런데 흑인 중산층들이 생성되자 이들이 뒤처진 빈민층을 돌아보지 않았다. 빈민층의 사회적 소외감이 더 커지고 빈부격차는 고착화됐다.”

-1994년 흑인이 권력을 잡은 이후 백인에 대한 역차별, 범죄의 일반화, 고급두뇌 유출 등 각종 문제가 터져나오는데.

“두뇌 유출은 아파르트헤이트가 무너질 조짐이 보이면서 이미 나타났다. 하지만 남아공 내 백인 인구 비율은 10~15%로 큰 변화가 없다. 백인이 나가는 만큼 들어오고 이중국적을 갖고 왔다갔다 하는 경우도 많다. 범죄는 사실 심각하다. 정부는 의지도 없고 역부족이다. 90년대 이후 국경이 개방되면서 나이지리아 등에서 온 불법 이주민들이 체류하며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또한 흑인들은 자기들도 역사적으로 큰 피해자였는데 그 정도가 무슨 문제냐는 생각도 있다.”

-아직도 아프리카가 전통과 인습에 얽매인 사회인가.

“더 이상 아프리카에 전통이나 부족사회는 없다. 시골에 가도 TV가 다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남의 것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남아공 인구의 70%가 교회에 다니는데 자기네 민간신앙과 섞어서 자기들만의 기독교를 만들었다. 최근까지도 방송사에서 아프리카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며 전통 부족을 찾아다녔다. ‘안 그러면 화면이 되지 않는다’며 PD가 스트레스를 받고 심지어 돈을 주고 시키기도 했다. 민속촌에 가면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월급 받고 출퇴근한다. 퇴근하면 청바지로 갈아입고 휴대전화로 통화한다.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남아공 TV에서 한국 관련 영상을 여러 차례 내보냈는데 화면은 항상 똑같았다. 고궁과 한복 입은 사람들이 나오고, 여자들이 애완견을 안고 걸어가는 장면과 오버랩돼 개고기집이 나온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를 그렇게 본다. 우리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그렇게 보는 것과 똑같다.”

-남아공 월드컵을 어떻게 봐야 하나.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첫 월드컵이자 아프리카가 세계인을 초청하는 가장 큰 이벤트다. 이솝우화 중에 낙타와 상인 얘기가 나온다. 사막의 텐트에서 자던 상인이 조금씩 조금씩 몸을 들이미는 낙타한테 밀려난다. 이게 아프리카의 식민지 역사다. 독립을 해 겨우 텐트를 되찾았지만 이미 갈가리 찢어져 있다. 이를 꿰매고 메우는 작업을 반세기 넘게 하고 있다. 우리와 상관 없다고 편견과 무관심으로 대하지 말고 동등하고 객관적으로 봤으면 한다.”

정영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월드컵 D -7 아프리카, 그리고 축구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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