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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중앙시평

김정일의 경제수석이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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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오랫동안 고민하던 내용을 정리한 지 벌써 며칠 전. 사무실엔 두툼한 보고서로 만들어 놓았고, 주머니엔 요약을 넣었다. 길게 혹은 짧게, 몇 번 연습도 해봤다. 보고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므로.

그러나 기회는 쉽지 않았다. 매일 김정일 위원장을 볼 수는 있었지만, 경제 이야기를 꺼낼 계제가 아니었다. 위원장의 관심은 온통 천안함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회의도 늘 천안함 대책이 주제였다. 정복에 권총을 찬 장성들이 위원장을 에워싸고 ‘조준 격파사격’이니 ‘무자비한 대응’이니 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경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랴. 필히 “동무는 참 한가한 사람”이라는 핀잔만이 돌아올 것이 뻔했다. 하긴 위원장도 남쪽의 천안함 조사 발표 이후 거의 두 주일이나 현지 경제지도도 중단하고 집무실에만 있었지 않았던가.

하지만 답답했다. 군인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위원장이 공언한 경제강국과 강성대국 건설이 이제 일년 반 앞으로 다가왔는데, 대체 무슨 작정으로 남쪽 군함을 격침시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남쪽 해역으로 몰래 들어가서 말이다. 그러고서 어떻게 경제를 살리라는 말인가.

신년사에서 위원장은 ‘인민생활 향상’을 2012년을 위한 올해의 화두로 내걸었는데, 정작 경제 여건은 더 나빠졌을 뿐이다. 위원장은 후진타오 주석에게 ‘날조극’이라고 하고 온 모양이지만, 중국이 순순히 믿는 것 같지도 않다. 최근 논평은 초기와는 사뭇 뉘앙스가 다르다. 러시아는 남쪽에 조사단을 파견하기까지 했다. 상황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결국 올해 초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은 성과를 낼 수 없어 보인다. ‘혈맹’ 중국 기업이라도 약속한 투자를 보류하고 사태의 전개를 주시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곳에 누가 투자를 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누가 대부를 실행할 것인가. 게다가 남쪽은 교역을 중단했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 수억 달러의 수입이 날아갔다. 사업 논의를 위한 접촉조차 막혔다.

그동안 중국과 남쪽의 경협과 지원에 기대어 경제를 꾸려왔는데, 이젠 막막하다. 올해 과업을 수행하지 못하면 책임은 내게 돌아올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군인들이 괘씸하기까지 하다. 자기네 살자고 경제일꾼들 죽인 셈이기 때문이다.

하긴 남쪽도 서운하다. 우리 실정을 그렇게 모른단 말인가. 심리전을 해봐야 주민은 동요하지 않는다. 심리전으로 흔들릴 정도라면 우리는 진작 망했을 것이다. 군부가 난리를 치는 이유는 오로지 ‘최고 존엄’을 헐뜯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군’ 체제 아닌가. 군부가 가만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실질적 효과는 없이 군부만 자극하고, 그래서 강경세력의 입지만 강화시켜 주는 조치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상황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찌 됐든 나는 경제를 챙겨야 한다. 인민의 안타까운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솔직히 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그러나 경제를 위해서는 우선 천안함 문제가 풀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위원장의 결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만들었던 보고서다. 뒷부분의 내용들, 예를 들어 협동농장 분조 규모의 축소, 인센티브제의 확대, 기업 자율권의 강화, 무역의 분권화 같은 구체적인 경제조치들은 오히려 사족이다. 핵심은 전제조건이라고 이름 붙인 책임자의 처벌이다.

난 이렇게 보고할 작정이었다. “강성대국 건설은 위원장 동지의 위대한 업적이 될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는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중국과 남쪽 이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일단 군부 책임자를 ‘망동분자’로 처단하십시오. 그래야 사태가 수습 국면으로 넘어가고 경제 회생의 기회가 생깁니다. 과거 수령님도 1·21 사태를 그렇게 해결했고 위원장 동지도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그런 식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경제는 신용이고, 불확실성은 경제의 최대 적입니다. 조속히 신용을 회복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않으면 강성대국 건설이 무산될까 걱정입니다. 위원장 동지, 길게 멀리 보십시오.”

그러나 오늘도 감히 보고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소심한 탓일까. 군인들이 두려운 탓일까. 자리가 아까운 탓일까. 심한 부끄러움에 다시 안주머니의 문서를 만져본다. 정도의 차이일 뿐 다른 나라의 수석들도 대개 나와 같을 거라고 한편으론 자위하면서.

조동호 이화여대·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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