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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신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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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대 이집트시대 때까지는 귀족·승려·전사(戰士)들만이 신발을 신을 수 있었다. 일반 시민은 맨발이었다. 평민들이 신을 신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로마시대부터다.
그래서 서양설화나 이야기 가운데는 신발과 신분의 상승을 연결시킨 작품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이야기다. 계모에게 구박받던 신데렐라가 유리구두의 주인공이 된 이야기는 신발과 신분상승의 연관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신데렐라가 신은 구두가 원래는 유리구두가 아니라 모피구두라는 말도 있고 유리 슬리퍼였다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모피가 유리로 바뀐 것은 흰 모피를 의미하는 불어 단어(vair)가 유리(verre)와 발음이 같아 원판본에 있던 모피구두가 나중에 유리구두로 바뀌게 됐다는 설명이다.
유리구두 말고 프랑스어에서 파생된 신발과 관련된 단어로 유명한 것으론 태업을 의미하는 사보타주(sabotage)가 있다.'사보'(sabo)는 옛 프랑스 농민들이 신던 나막신으로 사보타주는 농민들이 가렴주구(苛斂誅求)에 항의해 '사보'를 신고 농사의 수확물을 짓밟아 영주에게 손해를 입히는 행동을 의미했다.
그런데 문화학자들 가운데는 발과 신발이 변태적인 성만족의 대상이기도 했다며 특정한 신발의 유행을 성적 취향의 변화와 연관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중국의 전족(纏足)이나 하이힐, 요즘 일부 여성들에게 유행하는 거대한 신발 등도 특정시대의 성 풍속도 및 사회적 현상으로 해석한다.
신발의 기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인 '헤게소의 묘비'(BC 420)엔 귀부인인 헤게소가 신발을 신은 채 하녀가 내민 보석함에서 장신구를 고르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신발이 예부터 여인들의 치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얼마 전 한 보석장신구 회사가 황금신발을 제작해 신발의 주인공을 찾았다. 이 회사는 금 45돈을 녹여 18k로 황금신발을 만들었다. 전문세공사가 동원돼 각고끝에 탄생한 신발은 2백20㎜ 짜리 하이힐 오른쪽으로 볼이 몹시 좁았다.
그런데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실시된 이 행사에 자신들의 발을 맞춰보려는 여인네들이 멀리 지방에서까지 몰렸다고 한다. 이 시대에 황금신발이 여인들에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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