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친정체제 강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妹弟)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좌천설(4월 초), 북한의 휴대전화 몰수 시작(5월 말), 남북대화 중단(7월), 김 위원장의 처 고영희씨 사망에 따른 권력 투쟁설(9월), 북한의 4차 6자회담 일방 연기(9월), 김 위원장 초상화 일부 제거(11월)….

서울과 워싱턴.도쿄(東京)의 대북 정보당국은 올해 내내 북한의 내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김 위원장 신변 이상설, 군부 쿠데타설 등 온갖 루머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7월에 김일성 조문 허용 거부를 이유로 남북대화를 전면 중단한 데 이어 9월에 6자회담마저 연기하자 북한 정권의 붕괴설까지 나돌았다. 도대체 평양 권력 핵심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중앙일보는 최근 한 소식통을 통해 흑막에 가려 있던 평양의 권력 판도 변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이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9~11월 평양의 권력 구조를 전면 개편했다. 권력 개편의 핵심은 김 위원장의 친정(親政)체제 강화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2월 발생한 장성택(58) 사건이 권력구조 개편을 촉발시켰다. 노동당 2인자인 장성택은 당시 호화 결혼식과 경제분야와 관련된 모종의 사건에 연루됐다. 장성택은 당으로부터 집중 검열을 받았고 한직으로 좌천됐다. 이와 관련, 일본의 도쿄신문은 지난달 13일 장성택이 박봉주 총리와 정책적 갈등을 벌이는 과정에서 해임됐다고 보도했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노동당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군사부.경제정책검열부.농업정책검열부 등 3개 부서를 해체했다"며 "인원을 기준으로 할 때 약 40%가 이동했다"고 말했다. 노동당 기구가 개편되기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처음이다.

특히 이번 노동당 개편에서 주목되는 것은 당중앙위원회 비서국 산하 군사부의 해체다. 소식통은 군사부 해체와 관련, "북한 권력의 핵심인 군부에 대한 당의 간섭을 배제하고, 군부에 대한 김 위원장의 친정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김 위원장이 총사령관(김정일)-총정치부-군 일선으로 바로 연결되는 채널을 통해 군부를 직할 통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노동당 장성택(원 안) 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1999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행해 양어장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화보 '조선' 2000년 2월호]

당중앙위원회의 경제정책검열부와 농업정책검열부는 폐지되고 그 권한은 내각(행정부)으로 이관됐다. 경제정책검열부는 북한의 중공업과 경공업 등 모든 경제단위에 대한 당의 통제를 담당해온 기관이다. 농업정책검열부도 북한 농사의 전반을 지도하는 기관이었다.

북한이 당 경제정책검열부와 농업정책검열부를 해체한 것은 경제회생을 추진하는 내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로 관측된다. 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공장.기업소에 독립채산제를 도입, 경제에 대한 당의 통제를 느슨히 했다. 또 2003년 9월 내각 총리를 실물 경제통인 박봉주로 교체했다. 전임 총리로 경제전문가인 연형묵 자강도당위원회 책임비서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포진한 것도 향후 내각의 목소리가 커질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번 노동당 구조조정과 관련, 소식통은 "조직지도부의 이제강, 이용철 부부장이 통폐합을 주도했다"며 이 두 사람이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실세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또 "북한이 내년 2월 16일 김정일 생일을 계기로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노동당 개편에는 후계체제를 겨냥한 정치적 포석도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북한 전문관료들 가운데서도 김 위원장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흐려지면서 점차 의심과 반감이 번져가는 게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이번의 구조조정이 그 같은 세력의 성장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은 지난 50년간 입법.행정.사법.군부를 통제해왔다. 노동당은 내각의 인사와 경제정책은 물론 군수산업에서 군사작전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이중삼중으로 통제해왔다.

최원기.정창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