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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순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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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여성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1979년 8월 신민당사를 점거하고 농성투쟁을 벌였던 YH무역의 노조지부장으로 옥에 갇혔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뒤 풀려났다. 그는 지난 봄 4.15 총선 정국에서 민노당 홈페이지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앞으로 편지 한 통을 띄웠다.

"십대 후반, 돈 벌 꿈을 갖고 무작정 상경한 저는 YH무역이라는 가발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의 삶과 우리 사회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죠. 그때 텔레비전에서 차분하고 이지적으로 생긴 당신의 얼굴을 처음 보았습니다. 당시 저는 당신의 이름이 '영애'이고, 남동생의 이름이 '영식'인 줄 알았습니다. … '영애' 박근혜와 '공순이' 최순영에 대한 고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재능과 능력만 있으면 잘살 수 있고 평등하게 대접받는다는 기존의 믿음이 틀렸음을 깨닫는 작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애는 남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대통령의 딸을 부르는 존칭이었다. 공순이란 단어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그 정확한 풀이를 달고 있는 책을 만났다. 출간된 지 20년을 맞아 새 편집으로 선보인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느린걸음 펴냄)이다. 편집인 강무성씨는 책 끝에 '낱말들:시대의 기억'이란 작은 사전을 붙이면서 "'노동의 새벽'의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그러나 새로운 세대에게는 생소해져 버린 몇몇 낱말은 약간의 해설을 필요로 한다"고 썼다.

우리의 정치사회적 기억력을 시험하는 이 사전에 따르면 '공순이, 공돌이'의 정의는 이렇다.'젊거나 어린 남녀 공장노동자를 비하의 의미로 일컫던 말. 당시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10대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선진조국 창조'를 위해 '기름밥'을 먹으면서 '조출철야'하던 '공순이, 공돌이'가 있었기에 '아아 우리 대한민국'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최 의원의 편지는 "우리 정치에서도 '공순이'와 '공돌이'의 시대가 도래함을 목도하면서 30년 전에 흘렸던 제 젊음의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됩니다"로 끝난다.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새벽 쓰린 가슴 위로/차가운 소주잔을 붓는다'던 박 시인의 분노도 헌정 음반과 기념 공연 '스무살 공순이의 노래'로 거듭난다니 또한 헛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