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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뿌리찾기 쉽지 않지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입양아인 우리들에게 한국은 어떤 곳일까.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의 나라, 즉 우리의 뿌리가 남아 있는 소중한 나라다. 그래서 우리는 설레는 가슴으로 모국을 찾아와 한국인의 정체성을 맛보고 싶어 뿌리를 되찾으려 애쓴다. 처음 모국에 온 입양아 가운데 절반이 낳은 부모를 찾겠다고 나서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생활 환경에서 살아온 세월이 길었던 만큼 만남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입양아가 자라온 사회와는 달리 지나칠 정도로 극도의 친밀감을 가지고 싫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먹어봐라"하고 권한다든지,"밖에 나가지 말고 엄마하고 놀자"며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제약하려들 때 당황하게 되고 심적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무심하게 대하는 경우엔 '내가 이 가정의 단란한 생활을 깨뜨리는 불편한 존재가 아닌지'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복잡한 문화적 혼란을 겪으며 우리는 우리가 자라온 나라와 차이가 많은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과 생활한다. 한국에서 경험담을 서로 나눠가면서 빨리 적응하기를 원하고, 이를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성인이 돼 돌아온 대다수 입양인은 한국이나 친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평온한 삶을 꿈꿀 뿐이다. 그러나 입양아들이 모국에서 취업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유럽인인 입양아들은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나를 태어나게 한 나라-한국에서 뿌리내리고 살고 싶다는 것은 마음뿐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한국에 온 입양아들끼리 4년 전 조촐한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를 돕겠다는 한국 분들도 많아 입양인연대까지 결성하게 됐다. 그러나 현재 수준으로는 미흡하다. 입양아들의 한국 뿌리찾기와 관련한 문제를 단순히 개인 차원으로 돌리기만은 어렵다는 생각이다. 보다 조직적인 차원에서 해결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한국에 오자마자 친부모를 찾아나서 마음의 벽을 느끼는 것보다 경험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친부모를 만나는 데 충분한 준비를 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뒤 친부모를 찾는 카운슬러 프로그램이라든가, 정착 희망자를 위한 취업정보나 조언 등을 해주는 그런 기구가 필요하다. 나아가 자식을 버렸다는 한을 안은 채 한국에서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 친부모와 미혼모들을 위한 상담도 필요하다. 또 입양아·친부모가 서로 남처럼 살아온 수십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재결합을 희망할 경우 이들이 부닥치는 법률적·행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한국 안에서 이런 일들을 해줄 수 있는 법적 조직이 생긴다면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입양아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될 것인가. 희망이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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