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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 현금수송차 안전불감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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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거액의 현금다발들을 직원 혼자서 운반, 강탈당한 지 7분 뒤에야 112 신고, 폐쇄회로 TV가 없는 후미진 곳에서 현금 하차, 현금 수송용 전자가방 미사용….'

최근 잇따른 금융기관 현금 강탈 사건에서 노출된 금융기관들의 안전 불감(不感) 유형이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6일 금융감독원장.전국은행연합회장.시중은행장.새마을금고연합회장.상호신용금고연합회장 등에게 '현금호송 안전수칙'을 발송한 이후에도 사건이 다섯 차례나 발생했다.

지난해 시중은행과 한국은행 사이의 현금 수송액은 60여조원(금융계 추산). 하루 1천7백억원꼴이다. 거기에 본점.지점.출장소끼리 오가는 돈까지 합치면 집계도 못할 천문학적 액수지만 그 관리는 여전히 소홀하기만 해 범죄를 부르고 있다. 경찰청은 현금 수송이 크게 늘어날 설을 앞두고 25일 금융기관 관계자들을 불러 자체 방범 강화를 촉구하기로 했다.

◇ 수천만원 손에 들고 운송=지난 14일 광주 동구에서 발생한 현금 3천8백만원 탈취 사건은 신협 직원 한 명이 조수석에 돈가방을 놓고 운전하다 발생했다. 범인들이 차를 가로막고 조수석 문을 열어 가방을 들고 유유히 달아나는 장면을 그 직원은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2월 11일 강원도 춘천 새마을금고 현금 탈취 사건도 직원 혼자 4천만원이 든 가방을 들고 걸어가다 범인들이 몰던 차에 들이받힌 뒤 빼앗겼다. 특히 인원이 적은 소규모 점포들에서 종종 발생하는 사례다.

◇ 늑장 신고, 으슥한 곳서 하차=지난해 12월 18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조흥은행 현금 3천1백만원 탈취 사건은 경비원들이 7분이 지나서야 112 신고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토바이 날치기였는데도 신고가 늦어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였다"며 "당한 즉시 신고하는 것이 날치기범 검거의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권총강도에게 3억원을 빼앗긴 대전 둔산동 국민은행 호송원들은 폐쇄회로 TV가 없는 지하주차장에서 돈을 들고 내리다 당했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경로로 현금을 운송하는 일, 탈취시 고압전류가 흐르면서 경고음이 울리는 특수전자가방 이용을 외면하는 일도 큰 문제"라고 경찰은 지적한다.

◇ 묵살되는 경찰 경고=경찰청이 지난해 12월 금융관계 기관장들에게 공문을 보내 ▶자체 현금 호송시 인원을 2~3명으로▶호송노선 수시 변경▶가까운 거리라도 차 이용▶전자가방 이용▶가스분사기.통신장비 휴대 등을 촉구했다. 그러나 범행을 당했던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23일 "당시 상부로부터 그런 내용은 전혀 지시받지 못했다"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호송인력을 늘리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청 배성수(裵星洙)방범국장은 "일부 은행들은 현금을 탈취당해도 보험회사로부터 보상을 받기 때문에 자체 방범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강주안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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