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씨, 역술인 권유로 보물사업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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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형택씨 개입 사실이 드러난 진도 보물 발굴 사업에 한 역술인이 새로이 등장해 사건을 이채롭게 만들고 있다.

자칭 '천기도선사(天氣道禪士)'라는 金모(59.서울 동작구 사당동)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2일 보물 발굴 사업에 끼어들게 된 경위와 李씨와의 관계를 상세히 소개했다. 경력 8년째라는 그는 "보물은 분명히 묻혀 있지만 발굴 과정이 잘못됐다"고 했다. "특검팀이 부른다면 언제든 출두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말도 했다.

◇이형택씨와의 만남=金씨는 "이형택씨가 내 권유로 보물 발굴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며 "지난달까지 李씨의 사무실에서 십여차례 만나 이런 저런 논의를 해왔다"고 말했다.

金씨가 李씨를 처음 만난 건 1999년 12월 李씨의 예금보험공사 사무실(당시 강남구 삼성동)에서였다고 한다.

金씨는 그 두달전쯤 평소 고객이던 H건설 간부 출신 柳모(70)씨가 崔모씨 등 보물 발굴 작업을 추진하던 다섯명을 소개해줘 사업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성공할 사업이었지만 그들은 자금난 때문에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었지요."

金씨는 崔씨에게서 지인(知人)인 이형택씨에게 정부가 사업을 맡게끔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李씨를 찾게 됐다고 했다."이형택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발굴 사업을 마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직감했다"는 것. 당시 李씨는 사업에 반신반의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金씨가 "엄청난 보물이 분명 있다"고 거듭 설득하자 믿기 시작했다는 것.

"특히 李씨의 처가쪽 친척 문제를 해결해 주고, 김대중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북을 예견하자 보물 사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 "이용호씨 내가 추천"=金씨는 국정원의 사업 타당성 조사와 관련, 2000년 초 李씨가 "국정원 엄차장(작고한 엄익준 당시 2차장)을 통해 알아봤더니 정부가 뛰어들 사업은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해 8월 金씨는 보물선 사업자 吳모(34)씨와 함께 李씨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金씨는 "그 뒤로 吳씨가 李씨의 사무실을 수차례 들락거렸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吳씨를 모른다던 그간의 李씨 주장을 부정하는 얘기다.

그는 李씨에게 이용호씨를 보물 발굴 사업 인수자로 추천한 것도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2000년 9월께 李씨를 사무실로 찾아갔더니 허옥석씨와 이용호씨(당시 삼애실업 사장)의 명함을 보여주며 '누가 보물 사업에 적당해 보이냐'고 물어 영시(靈視)를 통해 즉석에서 이용호씨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당시 李씨는 許씨를 '은행 재직시 부하직원'이라고 했고, 이용호씨는 '최근 許씨 소개로 알게 됐는데 돈이 아주 많다고 알려진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

"지난해 4월께는 李씨가 '이용호가 투자하면서 사업이 잘 되고 있으며 吳씨가 2억원의 계약금도 받았다'고 말했다"고 金씨는 전했다.

◇진도 앞바다 위령제도=金씨는 崔씨 등 원사업자들과의 초기 만남 과정에서 일반인에겐 황당하게 들릴 영적(靈的) 행동도 종종 한 것으로 나타난다.

"柳씨가 崔씨 등을 데려와 '몇년째 보물 발굴 사업을 하고 있는데 어느 섬에 보물이 있느냐'며 진도 앞바다 지도를 펼쳐보였다.3백여개 섬 가운데 영력을 이용해 죽도를 가리키자 그들은 '우리가 보물을 찾고 있는 바로 그곳'이라며 깜짝 놀랐다."

그 뒤 金씨는 이들의 작업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수십년 전 보물을 매장할 당시 수장된 인부 2백58명(金씨 주장)의 넋을 달래려 죽도 앞바다에 밤새 빚은 만두 2백58개를 띄우기도 했고, 담배 다섯보루를 태우는 의식도 했다." 마지막 담배 보루가 불이 붙지 않아 발굴업자들이 영혼들을 위해 3배씩 절을 올리게 하자 불이 붙었다"는 金씨의 주장이다.

金씨는 "결과적으로 내가 李씨에게 보물 사업을 소개해 일이 난처해진 것 같아 미안하다"면서도 "독실한 기독교인인 李씨가 사업과 관련, 거짓말을 계속 하는 것을 언론을 통해 보면서 실망했다"고 말을 맺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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