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중앙시평

천안함에 무심한 국회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플라톤의 이 말이 오늘날 우리에게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론을 뺨칠 정도로 거짓이 힘을 얻고 있고 일부 지식인들조차 거짓의 힘을 키우는 데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만한 정론이 되었는데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조작설이 날개 돋친 것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중의 장삼이사가 자기 나름대로 소설을 쓰면서 ‘좌초설’이나 ‘오폭설’을 떠들고 다니는 것은 차라리 한 편의 ‘개그 콘서트’라고 치자. 그러나 유수한 동양철학자로 꼽히는 사람이 “정부 발표는 0.0001%도 설득이 안 된다”라고 공언했다면, 기가 막힐 일이다. 국제사회가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바로 그 천안함의 진실을 한국의 ‘내로라’하는 학자가 한사코 믿지 못하겠다고 강변하는 꼴이라니…. 플라톤은 ‘동굴의 어둠’ 속에서 나와 ‘태양의 진실’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철학자를 꼽았는데, 이 어인 일인가. 국제 민·군 합동조사단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끝에 뚜렷한 물증을 내놓았는데도 그 철학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진실 자체를 부인할 것이 아니라 자기 눈의 시력을 의심하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겠는가. 검증된 전문가들이 보았던 것을 자기 자신만 보지 못했다면, 색맹이거나 외눈박이다. 그도 아니라면 ‘눈뜬 장님’일 터이다. 그런데 웬일로 자기 눈은 탓하지 않고 진실만을 탓한단 말인가.

지식인들까지 나서 안보를 진실게임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있는 마당에 국회는 무얼 하고 있는가. 우리 국회가 대북결의안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부 발표에 0.0001%의 설득력도 없다고 판단해서인가. 미국 상·하원도 대북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 미주기구 등 각종 국제기구가 대북규탄 성명을 채택했다. 그럼에도 정작 비극의 당사국인 한국의 국회가 그런 결의안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조리의 극치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 진실을 밝히는 양심선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인가.

원래 우리 국회는 ‘알리바이’ 국회였다. 고통받는 서민들이 도와달라고 절규했던 시간에 국회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가공동체가 그토록 애타게 국회의 결단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국회는 요지부동 묵묵부답이다. 조국의 안위에 관심이 없고 조국애의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는 국회의원들이여! 그대들은 말재주나 피우는 궤변론자나 자나 깨나 북한편을 들기로 작정한 시중의 골수 친북좌파와 달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헌법기관임을 알고 있는가. 그런데도 서해바다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46용사들의 뜻을 받들 호국의지도, 대한민국을 외부의 호전적 집단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겠다는 안보의지도 없고, 오직 권력다툼에만 정력을 불사르는 권력의지밖에 없단 말인가. 다른 나라의 의회도 북한의 호전성을 규탄하고 있는 판에 한국 국회만 신선놀음을 하고 있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 아니, 그보다도 한 나라의 기둥뿌리가 썩고 있는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선놀음으로 어떻게 완고한 안보불신자들을 설득할 수 있으며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을 수 있으랴. 또 천안함 장병들이 흘린 피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국회가 어떻게 국민들로부터 혈세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모름지기 대북결의안을 내기 전까지 국회의원들은 세비를 받아서는 안 된다. 나라를 지키다 애잔하게 스러져간 꽃다운 젊은이들의 피에 보답하지 못하는 국회가 국민들의 혈세로 된 세비를 받는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공동체가 위기를 맞아 비장한 결의를 다져야 할 시점에서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하고 있는 무심한 국회여! 선거도 끝난 마당에 대북결의안을 내지 못하면 차라리 스스로 존재이유가 없음을 자인하는 국회해체결의안이라도 내는 편이 낫다. 국가공동체의 정론을 바로 세우는 것이 헌법기관인 선량들의 막중한 책임이거늘 정쟁에만 매달려 진실을 외면할 때,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는 국회가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라.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