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무대' 아마는 넓고 프로는 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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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꽤 알려진 중견 프로기사 C8단은 새해 들어 공식 대국을 두 판 했을 뿐 더이상 '일'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아마 강자 K7단은 "대회를 골라 나가고 있다. 오라는 곳도 많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바둑계에 프로보다 아마가 더 바쁜 이상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정규프로대회는 연간 10개. 프로들은 세계대회 예선까지 합해 매년 12번 정도 대회에 나간다. 젊은 강자들 등쌀에 단칼에 탈락하기라도 하면 연간 대국수가 몇 판 안된다(신예들은 따로 3개의 대회가 더 있다).

그러나 아마대회는 인터넷 바둑 붐이 인 데다 만들기도 쉬워 매년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전국대회인 아마국수전.아마유단자전.학초배. 대왕전 외에도 전주의 이창호배, 제주의 탐라배, 강릉의 MBC배, 조치원의 도원배 등이 생겼다.

바둑TV의 지송배.LG배 그리고 프로대회가 아마에게도 오픈되면서 생겨난 삼성화재배.돌벗배 등은 특히 아마추어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바둑TV의 전국 시.도대항전, 속기대회인 기우회 대항전도 화제의 대회.

인터넷 붐을 타고 온라인 대회도 많이 생겨났다. 세계사이버기원의 LG바둑사랑카드배, 하이텔의 최강자전과 10강전, 넷바둑의 산 소주배, 네오스톤의 사이버 아마국수전 그리고 타이젬 등 많은 사이트가 1~2개월을 기한으로 비정기적인 대회를 열고있다.

대회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사이버대회 덕에 아마추어 기사들은 전보다 훨씬 많은 시합 기회를 갖게 됐다. 프로대회 우승상금이 1천만~4천만원 선인데 비해 아마대회는 3백만~7백만원 선이지만 수적으로는 아마대회가 프로대회를 압도하고 있다.

스폰서들이 프로대회를 꺼리는 이유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대회는 상금만 주면 되지만 프로대회는 일일이 대국료를 지불해야 한다. 한데 과거에 비해 프로의 수가 크게 늘어(현재 1백81명)1억원 정도로는 도저히 생색이 나지 않는다.

반면 아마대회는 적은 돈으로 쉽게 만들 수 있고 스스로 찾아오니까 진행도 편하다.

이 바람에 중견 프로들은 파리를 날리고 있는데 프로 입단에 실패한 아마 강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4년제 대학 출신보다 전문대 출신이 취업을 잘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한국기원은 이런 현상을 한탄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일은 프로의 퇴출 시스템을 만들어 비대해진 몸집을 줄이는 일이다. 바둑대회의 재미를 높이고 스폰서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다.

얼마 전 노장 프로들이 은퇴 후 아마대회에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을 한국기원 이사회에 낸 일이 있다. 오죽하면 그런 청원을 했을까. 한국기원은 과감히 퇴출 시스템을 만들되 예산의 일정 부분을 은퇴기사를 위한 시니어대회에 씀으로써 자발적인 은퇴를 촉진해야 한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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