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뒷걸음치는 아마야구 국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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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은 지난 12일 고(故) 아이크 이쿠하라를 받아들였다. 1992년 암으로 사망한 이쿠하라는 일본 명예의 당 역사상 최초로 일본에서 활약하지 않고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선수도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구단주 보좌역으로 30여년을 보낸 인물이다. 60년대 초반 전 구단주 피터 오말리를 도와 다저스의 국제화에 많은 기여를 했고, 일본 아마야구와 프로야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야구 외교관 역할을 했던 주인공이다.

이쿠하라의 노력으로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아시아 야구의 종주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일본 아마야구를 대표하는 인물인 야마모토 에이치로는 국제야구연맹(IBAF)의 제1부회장(수석부회장)이며 아시아야구연맹(BFA)회장이다. 그는 아시아야구를 움직이는 입김이 가장 큰 인물이며 각종 국제행사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국내 아마야구의 현실은 어떤가. 대한야구협회는 김종락 전 회장이 아시아야구연맹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93년 이후 아시아 주도권을 일본에 넘겨줬으며 IBAF에서는 '꿔다논 보릿자루'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IBAF에는 무려 14명의 임원이 있지만 한국은 단 한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야마모토는 수석부회장이고, 아시아대륙 부회장은 대만인 톰 펭이다. 지난해 5월 스위스 로잔 총회에서 고익동 현 대한야구협회장이 상임위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고회장의 낙선으로 한국은 무려 10년째 IBAF 집행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집행위원회는 말 그대로 세계아마야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는 모임이다. 각종 국제대회의 개최 여부는 물론 대회규정이나 규칙의 변경까지 결정하는 집행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함에 따라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에 빛나는 경기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제무대에서는 들러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2001년 아마야구 사업보고서에서도 IBAF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시급하며 국제감각을 갖춘 경험많은 야구인 가운데 국제야구연맹에 적을 둘 적임자를 선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마야구의 외교력이 이처럼 바닥을 기고 있는데도 현 집행부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고익동 회장은 최근 대한야구협회 예산부족을 이유로 "국제대회에 참가해 기량이 늘어나면 프로에서 곧장 데려간다. 그래서 이제부턴 투자 가치가 있는 국제대회에만 참가하겠다"는 비상식적인 말을 했다.

그는 올해 참가 예정된(초청대회 포함) 7개 국제대회 가운데 2~3개만 참가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회장의 실망스런 말에 협회 상임이사들조차 그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의 거취는 22일 대의원총회를 통해 결정된다.

각종 대회 때마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판정.경기일정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온 '뒤로 가는 아마야구'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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