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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8 따라잡기] 청소년들이 문학을 무조건 싫어한다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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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청소년에게 소설을 권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이를테면 『삼대』(염상섭)만 해도 그렇다. 고교 교과서에 일부가 실리면서부터 공부 좀 하는 '범생'들은 열심히 읽지만 이들이 어떤 표정으로 읽고 있는지 보았다면 선뜻 권해주기는 힘들 것이다.

또 이들이 마지막 장을 겨우 덮은 다음에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을 들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선생님, 이걸 왜 읽어야 해요?"(오, 신이시여. 이 반복되는 질문을 나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토지』(박경리)도 그렇다. 아무리 명작이라지만 새로 21권으로 편집될 정도의 엄청난 분량을 생각할 때 선뜻 읽으라고 권하기가 힘들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21권의 다른 명작들을 대신할 만한 절대적 가치를 청소년에게 주는 소설인가 의문스럽다.

더구나 교과서에는 『토지』의 첫대목이 덜렁 실려있는데 왜 하필 이 대목을 골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작가의 비극적 세계관이 하동 평사리의 한가위 풍경을 슬프게 더듬어 가고 있는데, 참신하고 심도 있는 시각이 빛나기는 하지만 전개는 다소 허술하고 느슨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광장』(최인훈)과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은 행복한 경우다. 전쟁과 분단,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현재진행형 모순들이 청소년들에게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학생들 또한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책갈피를 넘기지만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스스로 대견스러워한다. 질문 내용 역시 놀라울 정도로 다르다. "선생님,광장과 밀실은 현재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요?" "선생님, 난쟁이와 작은 공의 상징적인 의미는 이런 게 아닐까요?"(문학은 교사와 학생을 깊이 있게 만나게 해준다!)

앞에서 예로 든 소설들은 모두 우리 문학의 빼어난 성과들이다. 하지만 1318 세대에게 소설을 권할 때는 그 기준을 문학성이나 문학사적 의의에만 국한해서는 곤란하다. 다시 말해 훌륭한 작품이라고 무조건 디미는 대신에 독자이자 학습자인 청소년 일반의 특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권하는 교육적 관점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청소년들에게 권할 수 있는 소설은 성장기에 마주치게 되는 보편적인 고민이 담겨 있는 작품이 좋다. 학업이나 진로.우정.사랑.성 등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작품들이 적절한 것이다.또한 내용이 '지금.여기'의 현실과 긴밀하게 관련되는가 따져 보아야 한다.

『광장』과 『난.쏘.공』처럼 적어도 현재적 의미를 길어 올리게 자극해야만 청소년들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청소년에게 권할 만한지,소설들을 새롭게 읽어 보자. 『당신들의 천국』(이청준)은 어떨까?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꾿빠이 이상』(김연수)은?….

허병두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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